대학입시의 계절에
대학입시의 계절에
  • 한관호
  • 승인 2009.08.27 09:28
  • 호수 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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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학 입시철이 도래했나보다.
지난 25일, 퇴근하여 경향신문을 펼쳐드니 온통 대학 수시모집 기사로 도배다. 무려 4면에 걸쳐 수시에 합격했던 선배들의 ‘이렇게 준비했다’란 경험담과 대학들의 수시합격 전형 방침을 줄줄이 담았다.
평소 이 나라를 떠메고 가는 80%의 성실한 국민 중에 한 사람으로 살면 족하다는 인생관이다. 그 80%의 평범한 삶도 한국에서 살아낸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하여 어느새 내달 9일부터 대학 수시모집이 시작되는 데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더구나 2주전 아들 녀석에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이미 들은 터였다.
안 사람과 형제처럼 지내는 이가 임신을 했다. 명색이 형부인데 축하로 저녁 한 끼는 사라는 아내 성화에 그들 부부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자리에 녀석도 함께했다. 이모가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학은 정했느냐고 물었다. 헌데, 녀석이 폭탄발언(?)을 했다.
한국에서 간호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건너가 간호사 생활을 하겠단다. 뜬금없는 남자 간호사에다 미국은 또 무어란 말인가. 자식 교육에 대한 한국 엄마들의 관심과 집착은 그 어떤 나라보다 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줏대 없이 늘 제 엄마에게 휘둘리는 편인 아들, 재빨리 아내 표정을 곁눈질 하니 이미 둘이 뭔가 깊은 애기가 오간 눈치다.

미국 운운도 짚이는 게 있다. 두 달여 전 미국에 사는 큰 처형과 처제가 다녀갔다. 이민을 간 처형은 미국에서 제법 자리를 잡고 산다는 데 장인 팔순을 맞아 15년 만에 귀국했다. 한 달 여를 머물다 갔는데 오랜만에 만난 네 자매들은 날마다 모여 수다였다. 처형이 간간이 전하는 미국은 한 마디로 열심히만 하면 누구에게나 기회의 땅이란 찬양이었다. 하지만 미국이란 나라를 탐탁찮게 여기는지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데 아내는 열심히 경청이었다.  
      
대한민국 부모라면 대개 자식이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공부해라, 어느 대학을 갈 것이냐는 등의 말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들에게 이런 투의 애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애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꿈’이 뭐냐고 물었을 뿐이다. 선문답처럼 네가 잘 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하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만 툭 툭 던졌을 뿐이다. 그러면서 씻고 벗고 자식이라곤 달랑 너 하나뿐이니 가끔씩 얼굴이나 보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전했다. 

짐짓 둘의 교감을 모르는 체 아들에게 간호대학을 선택한 연유를 물으니 ‘병원에서 여성에 비해 힘쓰는 일을 잘하는 남자 간호사를 선호해 취직이 잘된다. 미국에서는 간호사 월급이 고액’이란 그였다. 단 한 번도 꿈이 뭐냐는 애비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한 일이 없지 않느냐. 더구나 간호사란 직업에 호기심을 나타낸 일도 없다. 조목조목 따져 묻자 ‘이번에 확실히 한 번 꽂혔는데 내 선택을 믿어 달라’고 했다. 그래 네 인생은 네 것이며 부모가 무한책임 질수 없으며 결국 선택은 네 몫이라 가르쳐 오지 않았던가. 이왕 선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라는 말만 덧붙이고 말았다.

그랬는데, 한참 수시전형 기사를 정독 중인데 난데없이 콜렉터 콜이 왔다. 어쩌다 아주 가끔 기숙사에 있는 아들이 호출을 하곤 했던 터라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그냥’이라는 기운 없는 목소리다. 그러면서 주말에 집에 오느냐며 대학 진학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하고 싶단다. 그새 자신의 선택이 흔들렸나 보다. 천하태평이더니 가을 늦게 사 고 3 병을 앓는가 싶어 은근히 걱정이 되며 밤잠을 설쳤다.

지금 이 시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고 3을 둔 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일 것이다. 어떻게든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생각에 무조건 대학만 보내놓고 보자는 사회. 우리 아이들이 뒷배경이 없이도 정정당당히 경쟁하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자고 역설하던 대통령도 이를 현실화 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 정부 들어서는 가진 자만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불공정이 심화되고 있다.
커리어컨설턴트협회 황은미 회장은 ‘어려서 아이들의 적성과 재능을 파악해 그것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일정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땅의 보편적인 부모들이 아이들의 ’타고난 재능과 소질을 되 살리‘는 가정교육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간호사, 미루어 짐작컨대 아들의 선택은 그야말로 실직과 취업대란을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실사구시가 아니었을까. 단순하게 취직과 수입만을 고려하는 선택, 그러나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우리 청소년들의 꿈을 죽이고 나아가 한 인간의 행복지수 마저 초라하게 만들뿐이다.  
이제 겨우 고 3일 뿐인 아들, 하여 이번 주말에 내려가 녀석을 만나도 ‘네 꿈이 뭐냐’는 물음만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