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도 보고 뽕도 따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 한관호
  • 승인 2009.09.03 09:22
  • 호수 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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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2주 만에 아내와 만났다.
나들이 하자니 좋아라했다. 우리 가족은 시간만 나면 쏘다니는 편이었다. 축제, 문화답사, 지인들의 공연 등 전국 곳곳을 유랑하듯이 훑고 다녔다. 외지 나들이가 없어도 잠을 자거나 뒹구는 대신 남해 곳곳을 답사하곤 했다. 우리가 나고 자란 곳, 그리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갈 이웃들의 삶터를 둘러보았다.
그 마을 마을마다 깃들어 있는 전설이며 내력을 들려주었다. 모두가 서울로 통칭되는 도회지로만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들이 우리가 발 딛고 선 남해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곳인지 느꼈으면 했다.   

헌데 아들이 고 3이 되면서 나들이를 자주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들 대학 진학에 목을 멘 것도 아니다. 사실은 한국의 여느 고 3 부모들에 비해 우리 부부는 유난하다 할 정도로 자식 대학 진학에 덤덤한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심리적으로는 부담이었던지 부부만의 일상을 자제했던 듯하다. 가족이라야 셋뿐이라 늘 총 출동이었는데 이번엔 모처럼 부부만 나서니 오붓한 기분이 쏠쏠했다.
뭐 할까, 어디 갈까. 영화를 보잔다. 그런데 남해에는 극장이 없다. 진주에 가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각박하고 시계처럼 무 감각적으로 흘러가는 도시가 싫다. 그럼에도 딱 하나, 도시가 부러운 게 있으니 문화다. 필자가 생활하는 대전만 하더라도 나서기만 하면 문화를 일상으로 향유할 수 있다.
서대전 사거리 시민공원 같은 곳에서도 시나브로 문화행사가 열린다. 사무실 옆에 극장이 있고 문화예술회관에는 뮤지컬, 공연, 전시회가 수시로 열린다. 저녁을 먹고 슬리퍼 끌고 산책 나갔다가 길거리 공연을 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중구청 앞에 가면 화실, 전시실이 있어 미술 감상도 쉽게 할 수 있다.

광양만 하더라도 백운아트홀이 있다. 광양제철에서 운영하는 백운아트홀에서 필자도 가수 장사익 공연, 뮤지컬, 영화 감상 등 문화 자양분을 충족시키곤 했다.   
진주로 향하며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아내는 ‘해운대’를 필자는 ‘국가 대표’를 내세웠다.

아내, 관객이 1000만 명을 넘어 섰다는 게 잘 만든 영화라는 증거다.
필자, 기자인 후배가 두 영화를 다 봤는데 국가대표를 추천 하더라. 기자의 안목을 믿고 싶다.
아내, 관객 수는 객관적이지만 한 개인의 선호도는 주관적이다.

필자, 그동안 영화를 본 관객 수만 보고 선택했다가 실망한 게 몇 번이냐, 이번에는 ‘입 소문’을 믿어보자
아내, 해운대는 블록버스터 장르라 대형화면과 사운드가 좋은 극장에서 봐야 한다.

필자, 블록버스터 영화는 보고나면 남는 게 없지 않더냐.
아내, 스포츠 영화는 소영웅중의, 애국주의, 극소수의 경우인 인간승리만 주입 시키더라.

필자, 스키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뤘다. ‘우리 생에 최고의 순간’을 봐라, 괜찮은 영화 아니더냐. 스포츠 영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아내, 윤제균 감독이 만든 ‘1번가의 기적’을 봤지 않냐. 소박한 우리 이야기를 담아냈다. 감독을 보고 선택하자.

필자, 미녀는 괴로워, 오 브라더스를 만든 김용화 감독 작품이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는 영화다. 마음도 신산한 시절인데 즐겁고 감동도 있는 영화를 보자.
아내,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봐라. 설경구, 박중훈, 하지원 등 한국영화계에서 내 노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다.  

필자, 출연 배우가 유명하다고 무조건 작품성이 높은 건 아니다. 하정우, 성동일이 이름값이 떨어지냐. 연기는 조연급들이 더 잘한다.    
      
두 의견이 팽팽했다.
보름 만에 만난 서 살갑기만 한데 잘못하면 어느 영화를 볼 것인가 하는 사소한 문제로 감정을 상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럴 땐 묘수를 찾거나 한 사람이 재빨리 물러서는 게 상책이다.
결론은 두 영화를 다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영화를 본 후 어느 영화가 나은지 객관적으로 평을 하자. 지는 사람이 영화 비를 내자고 했다.

뒷이야기는 아내가 영화 비를 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만의 극히 주관적인 평가일 뿐이라 어느 한 영화를 폄하하자 건 아니다.
한국의 보편적인 여느 부부들처럼 우리 부부 또한 세월이 갈수록 대화가 줄어들었다. 오랜만의 영화 감상이 부부라는 공감대를 더 깊게 했다. 님도 보고 뽕도 딴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