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헌신인가, 떡고물인가
진정한 헌신인가, 떡고물인가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3:03
  • 호수 1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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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렬목사 / 마나하임 커뮤니티 교회
예수를 은전 30냥에 팔고서 비참한 최후를 맞은 가룟인 유다를 대신하여 초대교회에서는 12사도 중 한명이 궐석(闕席)되자 이를 채우기 위해 보궐선거를 한 이야기가 나온다.

성경의 사도행전 첫 부분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지금도 교회의 여러 선거모델로 삼고 있으며 바른 일꾼을 세우는 좋은 본보기로 읽혀지고 있다.

사도 보궐(補闕)의 첫 번째에 제기된 문제는 과연 사도의 보궐이 필요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구약전통에 따라서 세워진 12지파와 예수의 12사도는 교회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유대 전통적 배경의 이유가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로 보궐의 필요성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두가 공감하는 가운데 진행하기로 결정이 된다. 이렇게 보궐의 필요성을 모두가 공감한 후에는 어떤 자격을 갖춘 자가 선출되어야 하느냐에 대한 자격조건이 세워지게 된다.
성경은 이를 예수님과 함께 동행 했던 자여야 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숨 걸고 증거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정했다고 나온다. 전통과 일반적인 지각 상식적인 범위에서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자격조건에 맞춰진 자는 바로 초대교회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증명하는 가운데 두사람이 적격자로 세워지게 된다. 한 사람은 당대 교회의 영향력 있는 바사바(바나바)라는 사람이었고 또 한사람은 무명의 맛디아라는 인물이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세워진 후에 공동체적으로 함께 하나님께 섬김과 사도직의 직분을 잘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제비를 뽑게 했는데, 그 결과는 의외로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바나바가 아니라 맛디아가 뽑혀서 12사도의 수에 들어가게 된다. 제비뽑기는 구약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쓰던 방법이었다(성경이 정경화 된 후에는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된다).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지금 선거하는 사람들의 필요성을 논하고자 함도 아니고, 선거의 방법이나 여타의 것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각과 상식을 뛰어넘는(?) 분들이나 일이 너무도 많은지라 개선의 여지가 없는 소모적인 논쟁이 될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왕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이글을 쓴다.

12사도의 보선에 선출된 맛디아라는 인물은 선출된 이후의 행적이 성경과 여타의 자료에서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그가 어떻게 사도의 직을 다 수행했는지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도들과 함께 끝까지 그 직을 무난히 잘 수행했으리라는 추측은 성경에 특별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보궐선거에 떨어진 바나바라는 사람의 행적에 대해서는 오히려 여러 번 언급된다. 그는 초대교회와 기독교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을 인정하고 세우는 일과 기타 선교의 일에 무척 중요한 일들을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성실하게 수행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정말 일하고 싶고, 정말 일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진심이라면 이처럼 누가 시켜주지 않더라도,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고 공동체의 인정을 받지 못할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게 된다.
그러나 작금의 실태를 보고서 여러 번 우리들이 속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온갖 공약을 남발하며 일을 시켜달라며 열심히 지역사회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그렇게 외쳐대는 사람들이 진짜 당선 후에 잘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구태의연한 것도 그렇지만, 선거에 떨어진 사람들의 삶은 어떠냐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나 국회의원도 그렇고, 지방의 장이나 의회의 의원들도 마찬가지로 선거에 떨어진 사람들의 행적은 선거전과 후가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저 분이 진짜 이전에 했던 이야기가 진심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았다는 이야기다. 당선된 사람을 잘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딴죽을 거는 사람까지 볼라치면 참으로 난감하기까지 한다. 너무 다르므로 한두 번 겪어본 후에야 진정성을 확인하게 되고 진짜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얻어지는 떡고물에 눈먼 사람들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증명되는 것을 보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방의 일꾼을 뽑는데 바라기는 정말로 합당한 일꾼들이 뽑히길 바라고 이왕 자리의 한계가 있으므로 모두다 뽑혀서 일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비록 당선되어서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여전히 감당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웰컴투동막골”에서 유토피아적인 동막골의 촌장은 자신의 위대한 지도력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인민군 장교의 물음에 “거저 마이(많이) 멕이는 것(먹이는 것)”이라는 대답을 해서 지도자와 일꾼의 모습이 무엇인가 많이 생각케 했었다.

정말 필요로 하는 곳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필요한 만큼의 일들을 필요한 사람이 소리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섬겨가는 그런 모습이 지금 우리 지역사회에 너무도 절실히 요구된다.
 
입력 : 2006년 03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