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포기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
“삶의 포기는 결국 자신을 죽이는 일”
  • 최인철
  • 승인 2010.04.26 09:21
  • 호수 3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 다리는 없지만 봉사하는 삶 사는 김종면 씨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등록 장애인 수만도 213만7천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선천 또는 후천적 장애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는 가족들에게도 전이가 돼 한 가정에도 심각한 사회적 장애를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은 아직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장애인들의 삶의 의지를 꺾고 있는 상황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현실의 벽은 여전히 두껍고 높다.

하지만 장애는 극복의 대상일 뿐인 사람들도 있다. 특히 통상적으로 선천 장애보다 후천 장애는 큰 후유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이를 새롭게 사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인생의 폭을 넓히는 이들도 있다. 광양읍 칠성리에 사는 김준명(68) 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를 따라 미용 봉사에 나서 어려운 이웃들에게 자신이 가진 희망을 전해주며 위로가 되어주는 일을 십 수 년째 해 왔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그에게 그 일은 즐거움이자 자신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 그 마저도 쉽지 않자 주일마다 교회 주차장 봉사를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장애인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자신의 모든 정성을 쏟아서 건립한 교회에서 주일, 웃음과 감사함으로 하는 봉사다. 날마다 새로운 삶이다.

김 씨는 88년 열차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다. 그는 22년간 근면 성실하게 근무해 오던 철도공무원이었다. 사고 당일에도 순천 임천역 부근에서 선로 점검에 나섰다가 빠르게 진입해 오던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를 입었다. 수술을 해야 했다. 그리고 사고를 입고 의식을 잃은 지 5일 만에 깨어보니 다리가 온전치 않았다. 잘려나간 다리를 보는 순간 ‘쿵’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십 번. 잘려 나간 발가락이 자꾸만 간지럽다는 느낌은 차라리 악몽이었다.

그는 “삶을 포기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가 극도로 싫었고 심지어 형제의 모습도 보기 싫었다. 죽기를 작정한 적도 있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2년 동안 그렇게 좌절의 세월을 보냈다.

한 줄기 빛처럼 다시 세상으로 그를 인도한 것은 아내였다. 또 알토란 같이 쑥쑥 커가는 삼남매를 보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다. 그는 “그 모든 게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미용실을 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아내는 어려운 농촌 이웃들을 위해 수년 째 미용봉사에 앞 장 서던 사람이었다. 그런 아내가 집에만 붙어있던 그를 끌고 세상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 씨는 “봉사는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경험이다. 그리고 아픈 이웃들에게 ‘이런 나도 웃으며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며 “봉사를 나갈 때마다 주머니를 털어 그들에게 쥐어주고 빈털터리가 돼 돌아와도 가슴은 따스하다”며 웃는다.

그는 “장애는 없다. 뭐든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나 정부의 복지정책과는 상관없이 살려고 하는 의지, 혼자 일어서려고 하는 의지가 장애를 극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치유”라고 말했다.
이제 그의 남은 꿈은 장애인 만학도를 대상으로 하는 장학기금 조성이다.
작지만 공부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을 다해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이어가고 싶다”며 마지막으로 장애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이들을 위해 평소 자신을 채근하던 말을 던졌다.
“삶에 대한 포기는 결국 자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죽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