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읍성 내 관청 위치 찾아냈다
광양읍성 내 관청 위치 찾아냈다
  • 지정운
  • 승인 2011.03.07 10:00
  • 호수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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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역사 흔적 찾기’성과…읍성 시설·관아 18곳 위치 확인

광양시가 최근 광양읍성 내 관아를 중심으로 한 ‘광양 역사 흔적찾기’사업을 펼친 결과 읍성 관련 시설 5개소와 읍성 안 관아시설 13개소의 위치를 찾아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져 지역 문화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 광양읍성의 모습이 잘 나타난 고지도

이같은 결과는 지난달 25일 광양역사문화관 개관식에서 이성웅 시장이 “옛 광양읍성 주요시설과 길들을 찾고 사료화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광양의 역사흔적을 찾아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시점과 궤를 같이하고 있어 광양르네상스를 부르짖는 시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는 또 보존과 철거를 놓고 홍역을 치룬 원 광양군청(등록문화재 제444호)에 마련된 광양역사문화관 개관 시점에 맞춰, 조선 시대 이래 우리 지역 행정의 중심지인 광양읍 일원에 건립되었던 읍성의 규모 및 행정관청의 흔적을 발굴하여 알림으로써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연구는 성곽과 성안에 있던 관아 건물과 주요 시설물의 구체적인 위치가 파악돼 좀 더 정확한 발굴과 복원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광양읍성은 광양읍 일대에 있었던 옛 읍성의 터를 이야기하는데 언제 설치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펼치기 위해 1415년(태종 15년)에 쌓아진 성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목책성(木柵城)이었으나 1430년(세종 12년)을 전후하여 석축성(石築城)으로 개축되었다.

▲ 수성당 앞 돌담이 이채로운 읍성길. 읍성의 성벽은 모두 사라지고 대신 '읍성길'이란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크기는 둘레 1,812척(549m), 높이 13척(3.9m), 해자 둘레 1995척(604.5m)으로, 적대 7개와 옹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곽시설을 갖췄다. 성벽과 성문은 유실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1920년대 후반을 전후해 헐린 것으로 알려진다.
이 성은 북쪽의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평지에 조성됐으며, 해안선으로부터 약 2.5Km 정도 떨어져 해안선 조망이 유리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학예연구사를 주축으로 지리정보개발팀의 협조를 얻어 기초자료를 작성ㆍ완료한데 이어 시지편찬위원을 지낸 김광호 향토사가, ‘광양읍성의 공간구조에 관한 연구’논문을 펴낸 우승완 순천대 건축과 교수, 김선호 수성당 노인회장 등으로 자문단을 구성했다.

자문단은 현존하는 고지도와 국가기록원의 ‘지적원도’(1915년 간행),지적 폐쇄도면, 광양읍지, 사진, 각종 논문 등 각종 사료를 검토하고 대조해 위치를 확인했다.
시는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종합 위치도를 작성해 역사문화관 앞에 설치하는 한편, 개별 옛터에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석재 또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읍성 시설 5개소에 관아시설 13개소...정확한 발굴ㆍ복원 토대 마련

시가 밝힌 관청별 역할 및 위치는 다음과 같다.
먼저 광양읍성 관련 시설은 5개소로 동문과 남문, 서문, 성벽, 해자가 있다.
동문(청조루)으로 추정되는 위치는 광양읍 읍내리 167-3번지 주변이다. 남문(주변루)은 광양읍 읍내리 303-2번지의 도로 주변이며, 서문(읍서루)의 위치는 칠성리 357-2 번지 주변으로 추정된다.

▲ 읍성의 서문(읍서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구 경찰서 자리.
성내 시설물 및 인명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인 성벽은 읍내리 314-2번지 도로를 비롯해 310-2 도로, 308-3 도로, 305-2 도로, 277-2 도로, 290-2 도로, 325-4 도로, 325-3 도로, 253-9 도로 등이다. 성을 보호하기 위한 해자(도랑)는 현재 소로(小路)로 이용되고 있다.
읍성 안의 관아 시설은 모두 13개소로 행정기관 4개소와 기타 행정기관 8개소가 해당된다.

행정기관은 동헌과 내아사, 통인청, 객사가 있다. 동헌은 수령이 집무하는 건물로 읍내리 252-1 번지로 상설시장으로 추정되며, 수령 가족의 생활공간인 내아사는 읍내리 253번지(KT), 수령의 측근에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이 기거했던 통인청은 읍내리 252-1번지의 상설시장 서쪽에 해당된다.

희양관이라 이름이 있는 객사는 왕의 궐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왕명을 받고 지방에 내려온 관리들이 묵은 곳이다. 위치는 읍내리 239번지로 추정된다.
이밖에 행정기관은 모두 8개소이다.

질청은 이방을 비롯한 아전들이 모여서 소관업무를 처리하던 관청으로, 읍내리 272-1번지로 추정된다.
군인장교의 집무소인 라장청은 읍내리 264번지로 현 관사로 추정되며, 육방의 합의 장소인 장방청은 읍내리 267-1 번지 일원으로 보인다.

죄인을 가두어 두던 감옥인 형옥은 읍내리 159번지로 현 농협중앙회 자리에 해당되며, 관아 안 노비의 장소인 관노청은 읍내리 255-4번지로 추정된다.

교육을 담당했던 기관인 훈도청은 읍내리 273-1번지 일원, 형방들의 집무소인 형방청과 무기고 및 양곡저장소이던 본창은 칠성리 227-1번지로 구 광양경찰서 자리로 추정된다.
이외에 지방 양반(유지)들의 자치기구였던 향청이 있던 곳은 읍내리 245-18번지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