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보다 중요한 것은
논술보다 중요한 것은
  • 백건
  • 승인 2006.11.29 21:59
  • 호수 18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섬뜩한 표현이지만 내신+논술+수능으로 뽑는 2008학년도 입시는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불린다. 학생들은 이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대학별 논술 비중은 최고 30%까지 올라가고, 논술을 치르는 대학도 올해 26곳에서 내년엔 45곳으로 늘어난다.

일간지들은 저마다 읽기 능력, 논증력, 창의력 등 소위 ‘논술력’을 길러주는 학습 방법을 정리한 기사와 기획으로 넘쳐난다. 당장 발등에 불붙은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들까지도 논술학원으로 달려갈 정도로 논술광풍이 불고 있다.
 
심지어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직접 가르치기 위해 각종 문화센터의 ‘논술지도사’ 강좌는 폭발적인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논술 교육은 아직 가닥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렇다. 갑자기 논술시간이라며 ‘토론 모드’로 전환해보자. 그동안 수능 준비를 위해 오직 주입식 수업만 받았던 학생들이 어떻게 느닷없이 토론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불행하게도 교사들은 학교 다닐 때 토론식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토론수업을 실시해 본 경험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주어진 수업시간에 교과 진도를 맞추기에도 빠듯한데 토론식 수업이 가능했겠는가. 당연히 가르칠 자신이 없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역지사지 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논술의 ‘정의’는 누구나 유혹당할 만큼 미학적이다.

분명 ‘찍기 시험’만으로는 검증할 수 없는 글쓰기 능력, 사고력과 비판력, 문제 해결력,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오죽하면 이어령 석좌교수가 “지금 논술에 자신이 없다”고 하였겠는가. 어쩌면 독선으로 들리겠지만 각종 백일장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는 한 학생은 ‘지금 논술’에 자신이 없다고 말한다.

물론 “논술은 백일장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논술만이 ‘절대지존’처럼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느 면에서 문학이 진학을 위한 논술시험 도구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다.

고민을 해결해주려는 듯 교육부는 대학입시에서 고등학생들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가치를 묻는 논술문제로 교과서 수준에서 쉽게 내겠단다. 그런데 대학들은 변별력을 높이겠다고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 불안한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논술학원에 보낸다.

한편 일부 고교에서는 교사들의 일반 수업 부담이 커서 논술까지 지도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하여 논술학원 강사들에게 방과 후 논술 수업을 맡기기도 한다. 이래저래 전 국민이 목하 고민 중이다. 쏴아아…. 오늘 스산한 초겨울바람이 분다.

우수수 떨어진 낙엽들이 아스팔트 위로 나뒹군다. 계절 때문인지 바람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도대체 이렇게 모두의 논리력을 높여서 어쩌자는 것인가.

 아직도 현란한 말솜씨, 글솜씨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