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6.04 09:55
  • 호수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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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읍 쌍백, 본정, 점동, 억만, 익신, 현월, 초남 마을

금광시대를 지나 새로운 산업을 모색하며(2)
광양읍 쌍백, 본정, 점동, 억만, 익신, 현월, 초남 마을

금광시대를 지나 새로운 산업을 모색하며(2)광양읍 쌍백, 본정, 점동, 억만, 익신, 현월, 초남 마을

 

광업은 농·산·어촌의 전통을 이어온 광양의 새로운 산업이었다. 1960년대 1천여 명을 고용한 금광은 20세기 광양의 새로운 동력이었다. 필자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 호남지역의 지하자원으로 광양의 금과 화순의 석탄이 자랑스러웠고, 하태호 장학금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일본인이 묻어놓고 간 금덩어리를 발굴하자는 소란도 있었지만 경제성이 맞지 않아 채굴을 중단한 갱도는 서서히 원래의 흙으로 메워져 간다.
이 지역은 광양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철도, 국도, 고속도로가 나면서 마을을 단절시킨 곳이 많은데 광양이 도시화 되면서 두 갈래로 변한다. 봉화산 북쪽은 도시의 혐오시설인 쓰레기 처리장·영세공원·변전소 등이 들어섰고, 서쪽엔 초남공단에 이어 익신 산업단지가 착공되어 새로운 산업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변화에 적응하는 현장 지킴이
쌍두 박병규(70) 씨는 94년부터 쌀 전업농으로 지정받았는데, 98년 콤바인에 오른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입고도 한 손으로 농사를 여전하게 한다. 오리농법과 우렁이농법을 도입했고 왕겨를 태운 왕초액으로 병충해를 방제하며, 고사리 뿌리를 분양한다.

점동 하운호(81) 씨는 6.25 참전 국가유공자이며 화약취급1급 면허를 가지고 광양광업의 채광계장을 지냈으나 동료들이 모두 죽고 몇 사람은 진폐 합병증으로 순천병원에 입원해 있어 씁쓸하다. 광산 이후 밤나무를 심고, 광양곡수협회 초대 회장을 맡아 태풍 피해 보상과 항공방제를 이뤄냈다.

본정 이동원(73) 씨도 광산업을 경험했고 새마을운동 광양군협의회장도 지냈으며,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오면서 인근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광양환경공사를 설립하여 초대 사장을 맡았다. 지금은 양봉, 감, 매실, 고사리 생산자들이 제 값을 받고 팔기를 바란다.

본정 고영석(49) 씨는 남도임업을 경영하지만 나무병원을 주업으로 여긴다. 조경기사, 수목보호기술자 등의 자격도 있지만 산림과학원에서 ‘환경정화수 증식 재배기술’을 이전 받은 것을 뿌듯하게 여기며 생태조림을 내세운다.

익신 한민섭(53) 씨는 이장을 연임하면서 지난 5월 4일 기공한 일반산업단지개발사업조합 상임이사로서 공해 없는 업체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주민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한다.

현월 박연심(61) 씨는 39년 동안 재첩을 잡으며 6남매를 키웠는데 생업이 막혔고, 오성철(64) 씨도 부업을 잃은 주민으로서 공단이 확대되어서 환경오염의 심화를 걱정한다.

초남 김한식(64) 씨는 공단 매립 때 보상은 받았으나 직업 전환이 안 되어 과거 부자 마을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것과 환경오염으로 감나무에서 감도 생산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