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移徙)
이 사 (移徙)
  • 백건
  • 승인 2006.12.27 19:45
  • 호수 1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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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공동 화장실을 쓰느라 한이 맺힌 어떤 사람이, 화장실이 딸린 집을 장만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그런 집을 얻고 보니, 또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래서 그는 다시 열심히 돈을 벌어 그런 집을 장만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식구가 늘고 보니 화장실 하나는 너무 불편해서 두 개 세 개 있는 집이 부러웠고 그는 또 그런 집을 얻기 위해 돈을 벌어 이사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보니 어느새 인생의 막차를 타는 지점에 당도해 자신의 삶의 뒤돌아보니 평생 화장실을 얻기 위해서 이사하며 산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 버렸다나?

평생 이사한번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인생 자체가 이사의 연속이니 이사를 안 하고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본적으로 하는 이사는 결혼 때문에 분가하는 경우다.
 
그리고 교육 때문에 하는 이사는 유명한 이야기가 많다. 맹모(孟母)는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세 번씩이나 이사해야 했다.

한석봉의 어머니도 자식 교육을 위해서 유학을 보내며 석봉을 이사하게 했다. 맹모는 함께 갔지만 석봉의 어머니는 자식을 혼자 보낸 점이 다르다. 무엇이 더 좋은지는 사람 따라 다른데 우리나라는 맹모를 따르는 듯 싶다.
 
하지만 지역과 국적을 불문하고 이사하는 우리나라 학생(學生)과 학부모의 이사는 무시 못 할 숫자다.
 
이 외에 자기 소유의 집이 없으므로 이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타 많은 이사꺼리들이 있다.

한때는 이사철이라는 말이 있었다. 대개 초겨울부터 시작하여 1~2월 정도를 일컫는 말이었다. 임대계약의 만료 시점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인사발령에 즈음한 이사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사철이 따로 없는 듯 하다. 수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처지가 한두 사람 때문은 아닐터,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집이 투기의 수단이 되면서부터 셋방살이는 시도 때도 없이 옮겨야 할 판이다.

달팽이처럼 집을 들고 다닐 수는 없으나 평생 집을 지고 사는 거다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처지가 지금 우리의 처지가 아닌가? 집에 살고 있으나 그 집을 얻기 위해 평생을 노동해야 한는 아이러니가 현실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 가장 많이 느끼는 일이 불필요한 것을 왜 이렇게 많이 갖고 살고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평소에는 안보이던 물건이며 쓰레기 같은 많은 것들이 배출된다. 노숙자 한사람을 옮겨 봐도 그렇다.
 
뭘 그리 필요 없는 것을 보물처럼 움켜 쥐고 있는지. 그러고 보면 우린 때로 불필요한 일들을 너무 많이 신경 쓰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는 한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짐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 따라 다르지만 기숙사를 옮기는 일만 보더라도 이만저만한 짐이 아니다. 그런 일을 겪다 보면 우린 빈손으로 와서 가진 것이 참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일년 내내 한 번도 쓸 일이 없는 옷이랑 그릇들, 손 한 번 눈길 한번 안주는 책들, 서랍장의 많은 물건들... 인생은 이사의 연속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실에 안주하거나 비 본질에 매이지 아니하도록 자주 이사를 명하는 것을 볼 ! 수 있다.

이사를 해보면 그런 이유를 절감케 된다. 우리도 그런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때 생겼던 구조조정본부들이 해체되고 이제는 기획조정이나 정책개발팀으로 개편되었다는 소식이 반갑다.

이사하기로 결정되면 그동안 살던 집이나 사무실이 어느 순간부터 낯설게 느껴지고, 애착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장 난 것이나, 문제가 있는 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니 관리도 제대로 안되어서 금새 어수선해 지는 법이다.

그래도 당장 내일 집을 나가더라도 오늘까지는 내 집이니 정돈된 사람이라면 나가는 순간까지 꼼꼼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서는 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사를 가면서 청소를 해 주거나, 간단한 생활 정보는 주는 편지를 쓰는 것도 좋을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대충 살다가 이사를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불편하고, 이사를 가도 복잡해지는 일이 많다.

벌써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서 분위가 심상치 않다.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면서 이사를 꿈꾸던 대통령이 오히려 임기 말 이사 날짜가 다가와서 마음이 어수선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임기 말에는 일이 제대로 손에 안 잡히는 법인데 아직 일 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벌써 마음이 뜬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보나? 고스란히 국민들이 짐이 되지 않겠는가!
 
잘 살다 가도 할 일이 많은데, 이렇게 살다 간 다음에 새로 이사 들어온 사람은 집 치우다 볼 장 다 보는 것 아닐까?

며칠 후면 우린 모두 2007년으로 이사한다. 살아 온 날을 정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귀히 여기고, 이사 전후에 해야 할 것 들을 잘 챙겨서 새 터전, 새 시간에서의 삶이 소망 가득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