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9.03 10:00
  • 호수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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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광맥은 뱃길로 뻗어나간다

골약동 통사, 평촌, 황곡, 하포, 기동, 고길, 금곡, 황방 마을

황금광맥 봉화산의 북서쪽은 일찍이 광양금광으로 개발됐고 동남방의 황곡, 금곡, 고길 등에선 사금이 났다.

최근 황금지구와 황길지구 구획정리 사업이 문제에 부딪혀 있지만, 광양항을 굽어보는 마을들은 예나 지금이나 뱃길이 황금광맥이다.

홍선출해(弘船出海)는 하포마을이 배를 띄운 모양이라거나 구봉산이 울룩불룩 흘러내려 황곡, 평촌, 갯등, 하포로 이어지며 바다와 어울린 모양이라고도 한다. 98년 광양항이 열려 ‘큰 배가 바다로 나간다’는 예견을 이뤘다.

큰 배가 바다로 나가는 곳
통사는 고려 때 수군통사 벼슬을 한 사람이 났다는 마을이다. 전우치가 도술을 부리며 거처했다는 전설과 연자방아를 보관하고 초겨울이면 집집마다 절임배추를 생산한다.

평촌은 들판처럼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유물이 나왔다. 황곡은 ‘누룬실’인데 예부터 사금이 많이 나는 고을이라는 것과 비옥한 농토에서 누런 곡식이 많이 난다는 뜻이며 마을 회관에 연자방아가 있다. 하포는 ‘아랫개’며 ‘진지끝’이라고도 한다.

하포항은 1912년부터 38년까지 여수, 부산, 일본으로 배가 오갔고, 골약의 소재지 기능을 했다. 기동은 텃골의 한자어로서 살기 좋은 터다. 마을 입구의 ‘자라바구’라는 석조 거북은 100년 전 도로를 내면서 자라등이 잘리자 마을의 재앙을 막고 융성을 바라며 만든 것이다.

고길은 고지포로 염전이 있었고 예부터 살기 좋은 마을이란 뜻이다. 금곡은 금뱀이 숨어 있다는 ‘사북골’이며, 상포(냇갓)를 포함했으나 구획정리사업으로 주민들이 광양읍과 중마동으로 흩어졌다.

황방 앞산이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의 ‘눈실등’인데, ‘누운 소’가 황방으로 변했고 현직 국회의원이 났다. 염포는 ‘소금개’이며 지금도 굴을 까고 종패를 만드는 작업장이 있다.

세상은 많이도 바뀌었지만
통사 이돈근(67) 씨는 97세의 부친을 모시고 논을 밭농사로 바꿔지으며 광양항 배후지를 ‘물빛 공원’ 같은 추상적인 이름보다 ‘뻘등’ 같은 예전의 이름을 살리길 바란다.

하포 정용기(83) 씨는 골약동을 대표하는 마을 풍물단 30여 명을 이끄는 상쇠 노릇을 40년간이나 흥겹게 했는데 뒤를 이어줄 사람이 없다.

평촌 강희성(65) 씨는 제대하고 나온 25세의 청년 시절 뜻밖에 이장을 맡겨서 그때부터 마을 발전에 힘쓰게 되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이 마음 아프다.

황곡 정현제(73) 씨는 골약동장을 역임하고 마을에 살면서 전통문화를 바르게 이어가는 일에 의지가 강하다.

고길 박성규(85) 씨는 손재주가 많다. 돈벌이가 없던 일제강점기에 사금을 모아서 팔기도 했는데 지게, 베틀, 씨앗이, 덕석, 멧고리 등을 잘 만들고 구들장을 놓는 기술이 있다.

황방 유봉금(82) 씨는 부모님이 오사카에 돈 벌러 갔을 때 태어나 열여섯 되던 1945년 2월에 봉강으로 귀국했다. 일본에서 4년제 중학교를 다니며 배운 국토에 독도(다케시마)는 없었으며, 그때 꿈꾸었던 간호사와 교사의 길을 가지 못하여 한스럽다.

염포 이동인(84) 씨는 이곳에서 소금을 구워 삼천포와 통영으로 팔러 다녔고 김 양식도 했는데, 아들이 굴 양식장을 운영하여 인근 마을 주부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