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은 물론 ‘정’도 배달해 드려요”
“우편은 물론 ‘정’도 배달해 드려요”
  • 정아람
  • 승인 2012.09.28 13:47
  • 호수 4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족처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부모님”
광양 목성우체국 이상종 집배원

광양 목성우체국에 근무하는 이상종 집배원의 우편 담당 구역은 사곡리다. 구절양장 같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조용한 산골 마을인 사곡리. 이곳에서 영세공원으로 가는 방향으로 쭉 올라가면 대실마을이라는 작은 동네가 나온다. 이 마을 어르신들의 하루 일과 중 하나는 이상종 집배원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다듬고 있는 쪽파도, 입으로 가져가던 수저도 던져놓고 대문 밖을 나선다.

“여기 계셨구만, 오늘 왜 노인정에 안계셨어요?” 이 집배원이 한 마디 건넨다. “추석이라 자식들 오믄 밤이랑 감이랑 줄라고 챙기고 있었제” 라며 이 집배원 주머니에 잘 익은 감 두 개를 콕 쑤셔 넣는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전해지는 우편물은 농민신문, 고지서가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안부 편지도 종종 있었지만 통신의 발달로 많이 줄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이상종 집배원이 전달해주는 우편물 모두가 가장 받고 싶은 편지 같은 존재다. 동네 구석구석 우편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도 배달하는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까. 15년을 거슬러 올라 1997년 이상종 집배원이 첫 발령을 받은 때로 가보자. 그는 첫 발령지인 봉강에서 김모엽 할머니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사연을 소개했다.

대실마을 양춘일(71)어르신(좌측)과 이상종(40)집배원

이 집배원은 발령 첫 날부터 김 할머니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게 됐다고 한다. 자식은 멀리 있고 혼자 사는 김 할머니를 보니 어머니 생각이 난 이 집배원은 그 때부터 김 할머니와 독거노인 두 분을 함께 돌봤다. 요구르트도 사다 드리고 몸이 편찮으면 약도 사드리는 것은 물론, 생활용품도 전해주는 등 할머니와 가족처럼 정이 깊어만 갔다. 하루하루 이 집배원을 기다리는 김 할머니로서는 그가 소중한 가족이자 이웃이었다. 김 할머니는 멀리 있는 자녀들에게도 이 집배원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했다. 김 할머니 자녀들도 이 집배원에게 돌봐줘서 고맙다며 전화까지 할 정도다. 10여년을 넘게 김 할머니와 가족처럼 지내다보니 어느새 할머니는 집배원에게 어머니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인연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격이 자상하고 건강했던 김모엽 할머니는 2년 전 92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사람이 어떻게 거스르겠는가. 이 집배원은 “자식보다도 많은 정을 주고 챙겨준 김 할머니를 잊을 수가 없다”며 “하늘나라에선 잘 계실련지…”라며 고맙단 인사 한마디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봉강에 가면 특히 할머니 생각이 더 난다”면서 “할머니 집을 지나가게 되면 금방이라도 ‘상종이 왔나!’ 하며 시원한 물 한 잔 건넬 것 같다”며 애틋한 그리움을 보냈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이상종 집배원은 사곡리로 담당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마을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고 있다. 김 할머니에게 대했던 것처럼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그는 당연한 듯 자식이 되어 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하면서 만들어온 ‘집배원’이라는 우표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아름다운 추억 한 장으로 다가가 지금보다 더 향기로운 집배원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