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11.26 09:46
  • 호수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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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들판이 어울려 인심이 후덕하다

효자 김치조 시묘집, 뒤에는 '부영 국제 빙상장'이 있다.

광양읍 도청 월평 신도 회암 예구 덕산 동주 마을

선사시대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회암 마을 뒷산에 조개무지가 있고, 마을마다 고인돌이 널리 분포한다. 조선 후기 행정에서는 인덕면 지역이고, 마을 이름이 지형의 특성과 더불어 유교 이념을 담았다. 택지 개발, 도로 확충, 대학이 들어선 곳이지만 삶의 전통은 여전하다.

유교 이념과 이야기를 담은 마을

도청(道淸)은 서천 하류에서 동천이 합류하는 곳의 제방 안이며, 맑은 물처럼 깨끗하기를 바라는 이름대로 독립유공자 3인과 교육자가 많이 배출됐다.

토염을 굽던 염전이 농경지로 바뀌었고, 동천과 서천의 합수 지점인 배낫거리는 선창이었다. 월평은 들 가운데 있어 들몰(평촌)인데, 월(月)이 첨가되었다. 신도는 도청 마을에서 새로 생겨난 ‘새터’의 한자 이름이다.

회암 앞에는 고암(顧巖)이란 글씨가 음각된 고인돌이 있는데, 300여 년 전 효자 김치조가 시묘를 마치고 오면서 이 바위에 머물러 묘를 다시 돌아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서천에 도끼처럼 큰 바위가 있어서 도치바구 동네라고도 했다. 예구는 유교 도덕이 반영된 이름이고, 광양 유일의 옹기막이 82년까지 있었으며 그 옆의 20가구 흙집은 연립주택의 효시였다. 덕산도 유교 이념의 이름이며 곰뱅이산(熊坊山) 밑에 있다.

예구와 덕산을 합쳐 ‘갈티’라고 부르는데, 목마른 꿩의 모양이라서 갈치(渴雉)라 했다. 동주는 동지와 주령으로 구분된다. 동지는 동쪽에 못(인덕 저수지)이 있고, 주령은 옥녀봉 아래 치마 주름 같다는 주름골이 변했다.

개발 지역 주민의 전통과 새로움

도청 황은성(60) 씨는 외할아버지께서 소금 굽는 것을 봤고 시설 원예를 32년째 하며 애호박을 가꾼다, 마을에서 시설원예 하던 40가구가 15가구로 줄었고 도매인제 판매 방식이 생산자에게 불리하며 농업정책이 경제정책에 짓눌려서 안타깝다.

월평 장복심(78) 씨는 농토가 넉넉한 부촌에서 시설원예를 30년 동안 했었고 노래를 즐겨하여 지금도 옛 가락에는 흥이 난다.

회암 최창순(53) 씨는 오성아파트에 입주하여 주민들과 사귀고 서산을 오르내리며 인사말을 건네는 부부다. 농협 주부대학을 수료하면서 세풍 노인 돌보미 활동을 했고, 장애인복지관과 매화원 봉사활동은 배우러 다니는 일이라 여기는 한국화 작가다.

예구 박형병(72) 씨는 철쭉 접목까지 익힌 분재관리사이며, 18살부터 엽총을 지닌 수렵인으로서 ‘야생동식물 보호원’이다. 어린 시절 옥곡 부담에서 여순사건과 6.25를 당하여 15번이나 소개되었고 초등 4~5학년 때는 대밭에서 공부한 기억이 생생하다.

이임순(59) 씨는 농장을 하는 고달픔과 외로움을 서예와 글쓰기로 달랬다. 아들이 초등 1학년 때 체신부 주관 어머니 글쓰기 대회에 입선을 한 이후 수필집도 냈고, 사회복지사로 어린이집 원감을 하면서 봉사활동에도 나선다.

박부영(71) 씨는 교원으로 정년을 하고 ‘부영 국제빙상장’을 운영하며 ‘전남 빙상경기연맹’을 창립했다. 빙상장은 청소년의 체험학습과 교육활동, 선수 육성의 현장이다.

덕산 윤영준(68) 씨는 시설원예 20년을 하며 가축을 키워 살림을 마련했고, 최근 비탈진 매실 농장에 모노레일을 설치했다.

정필기(60) 씨는 19살 때 제주도에 가서 감귤을 비롯한 과수원을 살펴보고 과수와 농사하려는 야망을 고향에서 시작했다. 올해는 일반미와 흑미, 녹미를 재배했고 배추를 잘 가꿨으며, 수많은 작물들을 키워보는 연구심에서 재미를 얻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