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12.10 09:45
  • 호수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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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깃든 역사의 숨결

돈탁 송림 - 방재림 앞 섬진강변은 공사 중이다.

진월면 오추 추동 사평 돈탁 신기 구동 마을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가/청정한 자연은 마을의 표상” ‘구동 마을’이란 제목으로 새겨진 시의 한 토막이다. 국사봉이 호남정맥을 이어가는 뒤로 산세가 섬진강 가에서 숙어드는 사이사이에 신석기시대부터 깃든 삶의 흔적이 있다. 일찍이 구량포는 들판이 되었고, 사평과 돈태기 나루터가 사라진 강변은 공원으로 가꾸지만 강에서는 재첩과 벗굴 등을 생산한다.

산골짜기와 모래톱과 강가에서

오추는 오추골이며 산골짜기에 위치한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으로 뒷산이 까마귀 날아가는 형국이라는 설과 산세가 황우의 오추마처럼 날렵한 말 같다는 설이 있고, 양 부자와 김 부자의 전설이 있다.

추동은 가래골이며 산이 갈라진 곳에 위치한다. 옛 구량포(다리목) 위로 국도2호선 교량이 높다랗게 들어섰다. 사평은 모래톱이 평평한 곳에 형성된 마을이다. 사평장, 나루터, 학교 터전이 옛 이야기로 남았다.

돈탁은 거북등이 있어 돔테기→돈테기→전탁(錢卓)→돈탁(敦卓)으로 변했다. 신석기시대 유물이 나왔고, 강가에 방재림으로 조성된 소나무 숲은 향토문화유산이다.

신기는 새터이며 큰 배나무가 있어서 배나뭇골이라고도 했다. 마을 앞을 가로막은 산등성이로 국도2호선이 뚫고 나온다. 구동은 삼봉산 아래 굴레(勒) 같은 지형에 자리하여 구러개인데, 한자어가 구량포→구포→구동으로 바뀌었다.

삶의 애환을 간직한 사람들

오추 경원모(62) 씨는 79년 논을 팔아 부산으로 갔으나 박정희가 죽은 뒤 불경기라서 사업에 실패하고 돌아와, 마을 가까운 석산에서 25년 간 크락샤를 운전했는데 광양제철이 들어와 일감이 있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었다. 추동 김재현(76) 씨는 교직 은퇴 이후 농사에 전념한다.

농민에게는 농협에서 벼농사 대행 작업료를 낮춰주는 일이 제일 중요하고, 노인연금이 월30만 원은 돼야 병원비라도 충당할 것이라고 한다.

사평 김선주(53) 씨는 82년 제대를 한 뒤 광양제철이 들어와 김 양식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시설원예를 시작했다. 오이 재배의 간작으로 애호박을 시작한 것이 소득 작목으로 정착했고, 토질이 연작 장애를 안 받도록 벼를 심어서 염류를 씻어내도록 하는 기술로 06년 새농민 본상을 받았다.

돈탁 김종규(70) 씨는 ‘돔태기 농악단’의 상쇠인데 임실 필봉농악을 배운 이래 40년을 꽹과리와 함께 했고 한 마을에서 농악단을 운영하기가 힘들지만 집집마다 참여해서 단결하는 것이 자랑스럽다.
김윤규(59) 씨는 이장으로 07년 ‘돈탁 마을지’를 발간했고, 시설 원예를 하면서 재첩을 생산하며 양식계장도 맡았다.
신기 배정자(71) 씨는 마을이 산으로 가로막혀 시집 온 사람들의 가슴이 답답했다는데 지금은 가장 편한 곳이다. 어머니가 동생들을 저녁마다 낳는 것 같아서 그만 낳으라고 오지게도 졸랐는데 자신의 아이들 여섯이 모두 학생이던 때에 중학교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양태석(74) 씨는 78년 전남의 중·고등학교 교장과 학생 대표를 광주에 모이게 한 행사에 교장 선생님을 대신하여 갔는데, 구국여성봉사단 박근혜 총재가 온다고 하루 전날 내내 예행연습을 시키는 중에 아이들이 많이 쓰러졌고, 26살 박근혜에게 경례하면서 ‘충효’라는 구호를 외치는 일이 어이가 없어서 혼자 거부한 일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