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12.17 09:24
  • 호수 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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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높고 물 맑은 역사의 보금자리(옥룡면 답곡 선동 동동 죽림 내천 개현 항월 대방 흥룡  마을)
  호남정맥의 가장 위풍당당한 모습. 1천 미터가 넘는 도솔봉~백운산~억불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아래 역사의 흔적들이 있다.

구석기시대 유물, 절터와 문화유산, 학사대와 약수제단, 빨치산 은거지와 고로쇠의 발원지. 맑고 시원한 물가는 피서지로 손꼽히며 제철수련관과 백운학생야영장을 비롯하여 산장, 민박, 펜션이 이곳저곳에 들어선다.

산과 시내에 역사가 흐른다
  답곡은 논실 진틀 심원 묵방으로 나눈다. 논실(沓谷)은 논이 많은 골이고, 진틀은 구렁논을 일컫는 진들에서 유래하며 병풍바구 있는 병암까지 포함한다.

심원은 깊은 골짜기에 숙박하는 원이었고, 묵방은 먹을 만드는 곳이거나 산골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선동은 신선이 사는 고을인데 송천사 서쪽이어서 서동이라고도 했고, 송천사지 부도와 회은장로비가 있다. 동동은 송천사 동쪽에 있어서 동골이며 처음엔 마을이 학의 모습이라고 학동이었다.
 
죽림은 대숲골이고 마을 입구에서 1만 년 전 구석기시대 유물이 나왔다. 내천은 먼내이고 냇가에 능금나무가 있어서 내천인데, 삼한시대 내천현은 고대 광양의 중심지였고 옥룡면의 처음 소재지였다.

개현은 뒷산이 개의 형국이어서 개오개이며, 옥룡사로 넘어가는 큰 고개다. 항월은 대방에서 고개를 넘은 길목이라서 목너미(목넝기)며, 왕금산 앞에 거뮤니티센터와 축산물 직매장을 건축한다.

대방은 연화촌이었는데 꽃다운 큰 마을이라는 뜻의 대방(大芳)으로 됐다. 흥룡은 뒷산이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고 구석기시대 유물이 나왔다.

송천사지 부도- 응암당 부도 뒤로 2기가 있다.

힘들어도 고향산천이 좋다
  논실 김영조(85) 씨는 백운산 정상이 ‘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 모자’ 같아 송라봉(松蘿峰)이라 했고, 여·순사건과 6.25사변 때 소개 당한 마을이지만 돌아와 농사하며 통나무 베어내고 숯 굽고 고로쇠물 받으며 살았다.

묵방 차정준(59) 씨는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사무장과 왕금영농법인 총무이사로서 마을 가꾸기에 열의를 갖고 전국 여러 곳의 사례를 살펴 교육하러 다닌다.

선동 박종윤(67) 씨는 송아지 1마리로 21마리까지 늘린 70년대 후반 소 값 폭락으로 살 수가 없어 산장을 시작했다.

78년 자연보호헌장 공포 때부터 자연환경보전명예지도원 협의회장을 25년간 맡았고 광양시 새마을 회장으로도 봉사했다.

동곡 이종현(64) 씨는 부친이 54년부터 물레방아 제재소 옆에서 목재상을 할 때 산감들의 이삿짐을 지고 구례 간전과 연곡사까지도 갔었다. 35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귀향하여 옛터에서 산장을 이어간다.
 
개현 박채규(64) 씨는 광양 지형을 배 모양으로 보면 ‘광양시지’의 마을 기록은 바로잡을 것이 많다고 한다. 여·순사건 때 아버지가 모함을 받아 집에서 군인에게 잡혀가서 돌아가신 아픔이 있으며 최근 숲 해설가 과정을 수료했다.

홍경래(53) 씨는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10년을 근무하고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하여 소를 키운다. 부부가 다른 직장을 겸하면서 120마리를 키우는데 정부에서 폐업 보상을 해주면 전업도 생각한다.

항월 강대삼(77) 씨는 왕금산 금광 터를 78년 무렵 다시 채굴할 때 업무를 봤는데 금맥은 괜찮으나 비용 타산이 안 맞아 폐업했다.

대방 서병국(57) 씨는 경찰로 8년 근무하다 귀향하여 돼지와 소를 사육하다가 단감과 철쭉 재배로 돌렸으며 진상면 웅동으로 가는 도로가 빨리 뚫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