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기쁨
일하는 기쁨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4.17 09:08
  • 호수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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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랫만에 큰 길가에 늘어 서있는 감나무밭 정리를 했다.
명색이 감나무밭인데 지난해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감도 여는둥 마는 둥  볼품 없는 가지만 하늘 높이 자랐다. 큰 가지도 베어내고 밭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도 파내고 수십포나 되는 퇴비도 나무 밑에 뿌렸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되면 정성과 손길이 다가가는 것이 농부의 마음이리라. 지난 한 해는 시간 내기가 어려워 집 주변에 있는 과일나무와 논 밭에는 손길조차 미치지 못했다. 1 년이 지난 지금은 마음 속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는지 주변에서 묵고있는 감나무 밭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주인을 잘못 만나 그 동안 풍성하게 열매를 맺던 나무가 쓸모없이 키만 커졌고 버려진 땅 처럼 주변에는 우리 키보다 훨씬 크게 자란 잡초만 무성했다.

그 곳을 지날 때 마다 사실은 마음이 좀 불편했다. 그 아래 감나무 밭에는 수확기가 되면 주먹만한 감들이 보기좋게 주렁주렁 열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보기좋은 그림이 되었는데 우리 밭은 주인을 잘못 만나 농사를 그르친 것이다. 잡초와 감나무들을 볼 때 마다 게으른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우선 나무에게 미안했고 같은 동네 농부들 보기도 민망스러웠다.

서툰 농부가 일을 한 번 하자니 걸리는 것도 많고 방해하는 것들도 많다. 팔다리는 수시로 감나무 가지에  찔리고 뒷걸음 치다보면 큰 돌에 부딪히고 머리도 성하지 못하다. 익숙한 농부라면 쉽게 해치웠을 것을 나는 여러시간을 혼자서 낑낑거리며 해야했다. 그래서 농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마음만 있다고해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란 생각을 절감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팔과 허리가 아파오고 구슬같은 땀방울은 쉴새없이 쏟아지고 거친 숨소리가 턱밑까지 차오른다.
마치 극기 훈련이라도 하듯 따뜻한 봄볕 아래서 나는 내 자신을 시험해본다. 뿌린 만큼 거두고 정성을 들인 만큼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농사일이고 자연의 이치라는 것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해서라도 힘들지만 그 어려움을 견디고 더욱 힘을 내어야하는 것이 농부들의 삶이 아닐까 ? 괭이질을하면서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가을의 풍성함을 생각하면 여기서 이쯤의 고생이야 즐거운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지나치는 동네 아주머니가 " 더운데 욕보시네요 ? "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러면서 물끄러미 서서 나의 일하는 모습을 빙긋이 웃으며 바라본다. 저들은 아직도 내가 시골에 내려와서 생고생만 한다며 혀를 끌끌차는 분들이다. 하기사 그들이 보기에 일 솜씨도 서툰데 햇볕 아래서 오랜시간을 허비하니 오죽 답답하랴! 그러나 내게는 어떻든 힘들여 일하는 과정이 있음으로 해서 의미있는 하루였다.

일을 끝내고 나니 감나무밭은 단정하게 이발을 한듯 말끔해졌다. 내 마음 역시 오래 묵은 체증이 날아가 버린 듯 가벼워졌다. 집 앞의 다리에 들어서니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시원스럽다. 문득 계곡의 물 속에서 세수를 하고 싶어졌다. 바위 틈 사이로 장화를 벗은 채 들어가 땀에 젖은 머리를 담그니 찬물이 머리를 에워싸며 차가운 느낌의 "하아 !"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별천지가 따로 없다.
마치 한 여름의 더위인양 무덥게 느껴졌던 시간이 맑은 시냇물 속에 얼굴을 내밀으니 시원함이 그만이다. 이런 재미에 일도 하고 사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 물흘러가는 사이로 문득 어디선가 청아한 새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들어보니 가슴 부위가 노란색의 작은 새 한 마리가 길게 뻗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한다.

저도 푸른 나무잎이 돋아난 봄이 좋은가 보다. 힘든 노동이 없으면 이러한 시원함도 없을 것이고 즐거움도 없지 않은가! 세수를 한 다음 바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물 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봄날의 휴식을 즐긴다. 바위 틈 사이로 철쭉 꽃 한송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떻게 단단한 바위 틈 사이로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이렇게 작은 것에 까지도 자연의 섭리가 숨어있었고 나는 오늘 문득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힘든 노동을 이겨낸 뿌듯함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이런 과정은 수 없이 반복될 것이며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갈수록 냇물이 흘러가듯 적당히 뱃 속도 비어간다. 오늘 점심은 아주 맛이 있을 것이다.
평안이며 시골사는 보람이며 노동 후에 찾아오는 이 황금같이 즐거운 마음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