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 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 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3.01.07 09:29
  • 호수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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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 와우 마흘 사동 마을과 아파트단지

마동저수지, 생태공원을 기대한다.

도시 개발, 저수지가 호수공원으로

  가야산 남쪽에서 바다로 뻗어나가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형성한 중마동. 그 중, 마동은 도심의 외곽지대로서 옛 마을의 자취가 남았고 앞으로 개발이 진행되는 곳이다. 농경사회의 상징인 저수지 두 개 중에 와우는 호수공원으로 손질이 됐고 마동저수지는 생태공원을 계획하고 있다. 이곳은 도시 개발의 우선순위와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 도시화의 주변지대 마을

  와우(臥牛)는 뒷산등성이가 소가 누워있는 모습이어서 ‘눈쇠’였고 가야산 좌청룡의 끝으로 바다와 맞닿았다. 해산물에 의존하던 어촌일 때 와우선창은 해상 교통이 열린 곳이었고, 해방 전 간척사업이 이뤄져 농지까지 갖췄다.

제철소와 시청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88년 무렵 인구가 5천 명이나 됐던 곳이지만 개발에서 늦어졌고, 최근 택지개발이 진행되어 아파트까지 들어섰는데 마을은 환지개발 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남아있는 40 가구가 썰렁하다.

  마흘(馬屹)은 산봉우리가 말 같아서 마리(馬里)라 했으며 몰바구 아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알려졌으나 마을은 개발에서 제외되어 논란이 있다.

사동(寺洞)은 옛날 절이 있었던 곳이라서 ‘절골’이며 가야산 아래 첫 동네로 분지 형태였다. 지금은 산중 마을이었음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가야산 중턱의 돌굴에 동학군이 피신했다는 곳이다. 마동초등학교 부근이 마을이었고 옮겨 심은 당산나무가 흔적으로 남아있다.


□ 도시의 꿈을 이뤄가는 사람들

  와우 황인석(75) 씨는 이장을 하던 중, 90년대 광양제철을 상대로 태인동과 함께 어업권 보상 소송을 7년 동안 진행하여 10억 원 가깝게 받아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30년을 사는데 환지개발 방식은 말려 죽이는 처사라고 분노한다. 마흘 주성현(77) 씨는 중학교 다닐 때 빨치산에게 내려와 바구리봉까지 밤새 짐을 져다 주고 왔다.

마을의 일부만 개발하고 원래의 마을은 버려두는 것은 불만이다. 차건미(46) 씨는 땅에 화초를 가꾸고 싶어서 주택을 찾았고, 집 건너편 가게에서 화분을 가꾸며 건강차를 만드는 찻집을 운영한다. 박문옥(44) 씨는 개발 초기에 가게를 열었고 마동초등학교 자모회장을 한 뒤 삼육회에서 장학 활동에 참여했다. 학교 다닐 때 핸드볼 선수를 했고 비바클럽에서 배구를 즐기며 배구협회 부회장도 지냈다.

  사동 출신 유병소(58) 씨는 예전에 농사하면서 겨울철이면 나무하고 김을 하던 마을이 개발되어서 아이들 교육도 시키며 지역을 떠나지 않아서 좋다고 한다. 도장을 파는 솜씨가 있어서 성황에서 고급 도장 팠으며 마을 이장으로서 보상과 이주 업무도 추진했다.

금광블루빌 방승희(48) 씨는 부군이 서울에서 근무하다 사임하고 동생이 있는 광양으로 왔는데, 살면 살수록 정이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독후감과 글쓰기에 입상도 했으며 고전 수필 번역과 동시, 동화를 쓰며 논술 지도자가 됐다.

송보아파트 박승원(59) 씨는 중마초, 동광양중, 백운고 자모회장을 이어하며 학교 운영을 지원하고 소년소녀 가장 돕기도 했다. 다도에 관심이 있어 다도학과를 나왔고 찻집을 열어 전통자수 수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정혜신(42) 씨는 부군이 서울에서 회사를 그만두자 광양에 사는 형이 일자리 있다고 불러서 왔다. 서울에서 어린이 미술교사를 하다가 그만둔 일이 아쉬워 개별지도를 시작하고, 포크아트를 배워 강사로 활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