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에 관한 단상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에 관한 단상
  • 한관호
  • 승인 2008.08.28 09:28
  • 호수 27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화려했던 보름간의 베이징 올림픽은 끝났다.
베이징 시내를 환히 밝히던 폭죽 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하고 감동시켰던 드라마가 종영되고 있다. 대대적으로 선수단을 환영 한답시고 귀국마저 막더니 급기야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선수까지 불러 낸 청와대의 쇼도 끝났다. 이제 텔레비전에서 몇 몇 선수들을 불러내 호들갑을 떨기는 하겠지만 국민들은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아직 올림픽이 끝난 게 아니다.

다음달 9일, 베이징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제13회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이다. 세계 140여개 나라 7,000여명의 장애인 선수들이 모여 열전을 펼쳐 보일 것이다. 우리도 13개 종목에 선수 132명을 출전시킨다고 한다.
허나 장애인 선수들의 인간 승리는 이미 지난 번 열린 베이징올림픽에서 먼저 선보였다.
왼쪽 다리 무릎 아래가 잘려나간 몸으로 여자 마라톤 수영 경기에 나섰던 스물 네 살의 나탈리 뒤 투아(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는 한 다리로 육상 마라톤처럼 힘겨운 수영 10km 코스를 완주, 25명 가운데 16위를 기록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없어 왼손으로 드라이브를 구사하던 폴란드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 탁구는 몸 중심 잡기와 공을 칠 때의 스피드와 힘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그는 비장애인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다. 그러나 이제 열 아홉 살인 파르티카는 한 손으로 서브를 넣으며 세계랭킹 10위인 홍콩 선수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언론에서 또 ‘인간 승리’ 어쩌고 하는 기사가 나겠거니 생각했다. 이런 필자의 기대를 유감없이 반영하듯 이들의 이야기가 몇 몇 신문에 감동을 준 올림픽 선수들 운운하며 가십으로 보도됐다.

그렇지만 이 보도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비장애인들과는 견줄 수 없는 개인적 불리함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한 선수들이다. 더구나 자기 나라 비장애인 선수들을 제치고 국가대표로 뽑혔으니  사회적으로 귀감이 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헌데 문제는 장애인에 관한 방송이나 언론 보도가 특별한 소수 장애인들의 ‘인간 한계 극복’ 자체만 부각 시킨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살고 있는 450여만명의 보편적인 장애인 이웃들이 겪는 사회적, 제도적인 차별은 제쳐두고 ‘너희도 열심히만 하면 저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만 강조하려 드는 풍토다.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는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 영국의 천문학자 스티븐 호킹, 네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이희아 등 각별히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한 사례의 표상으로 회자되는 사람들이 많다. 언론은 이런 보도를 통해 아무리 열악한 신체 장애를 가졌다 할지라도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따라서 이런 보도를 보는 독자들은 장애를 순전히 개인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를 가졌다 할지라도 개인만 노력하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아니다. 

예를 보자.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장애인에 관한 보도가 복지시설을 둘러싼 논쟁이다. 어느 지역에 장애인복지 시설이 들어서려 하면 주민들이 나서서 ‘땅 값 떨어진다’ 며 반대 데모를 벌이는 기사가 비일비재하다. 누구에게나 배움의 권리가 있다지만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우리 대학에 지원할 수 없다’고 입시 요강에 명시하는 대학도 있다.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300명 이상 사업장은 종업원의 2% 이상을 반드시 장애인으로 채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사업장은 거의 없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인 주거와 교육, 직업권 마저 철저히 차별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방송이나 언론은 극히 극소수의 특수한 인간 승리만을 내세워 장애인 문제를 정형화 하는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정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 공포했다.
늦었지만 고용, 교육, 교통수단, 참정권 등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차별받지 않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직은 법규상으로 미비점이 많지만 그나마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온전한 한 인격체, 나라의 주체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라 여겨진다. 

끝으로 우문 하나.
신문과 방송은 이번 ‘베이징장애인올림픽’도 지난번 ‘베이징올림픽’ 처럼 야단법석으로 보도할까. 그리고 귀국하는 장애인 대표단도 청와대 대접을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