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고려인에 시들어 가는 ‘민족혼’ 일깨워
우즈벡 고려인에 시들어 가는 ‘민족혼’ 일깨워
  • 광양넷
  • 승인 2007.01.18 01:02
  • 호수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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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영웅 박강윤 향우 일시 귀국
 
광양읍 칠성리가 고향으로 광양서초등학교(34회)를 졸업하고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인근에서 감초가공공장을 운영하는 박강윤 향우(74). 그는 현지 고려인들로부터 ‘박동무’란 애칭과 함께 은인으로 대접받는다.

고려인들을 위해 각종 문화사업을 벌이며 시들어가는 ‘민족혼’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이곳 고려인 공동체 ‘시온고 마을’에 노인대학을 2개나 세운 공로 등으로 인해 교민상을 받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오는 23일 현지에서 노무현 대통령상을 수여 받는다. 친지 등을 만나러 일시 귀국한 그를 15일 저녁 8시 숙소인 광양읍 호텔필레모에서 만났다.

“가난과 노환으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려인 노인들에게 재교육 기회를 주고 민족문화를 지켜가도록 하고 싶었다”는 게 박사장의 설립취지다.

1998년 타슈켄트에 온 박사장은 약 30㎞ 떨어진 타슈켄트주 시온고 마을 부근에 감초가공공장을 세웠다. 현재 월매출 7천만원에 종업원 200여명을 둔 중견기업이다. 박사장은 시온고 마을의 고려인들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끌렸다.

시온고 마을은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연해주로부터 건너온 고려인 600가구가 정착해 있던 곳. 당시 끝없는 갈대밭에 이리떼만 출몰하던 6백만평의 황무지를 일구고 집을 지어 생활터전으로 만들어놓은 게 이곳 고려인들이다.

피땀으로 일궈놓은 땅이지만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살림살이는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 농사지을 손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고려인 1세들이 차례로 세상을 뜨기 시작하면서 이곳 ‘고려인의 터전’은 점차 활기를 잃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 박사장은 2001년 노인회관을 짓고 노인들을 불러모았다. 한국 드라마나 흘러간 노래 프로그램을 구해 틀어주기도 하고 장기·카드놀이 등 여가시설, 이발시설까지 갖춰놓았다.

그러다 박사장은 이곳 노인들이 활기를 갖고 살아가려면 평생교육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인회관을 노인대학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미 교실을 새단장해 3세 젊은이들을 위한 한글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지난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러시아 연해주에서 이주당한 고려인 1천여명이 개척한 시온고콜호스는 한때 농경지 면적만도 600만평에 달했고 600여가구 4천여명이 거주했었다.

그러나 구 소련 붕괴 후 농산물의 판로가 막히고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고려인 젊은이들이 대거 도회지나 주변 국가로 빠져나가 마을엔 현재 60대 이상 노인과 어린이들이 대부분이다.

더구나 농사를 짓는 고려인이 한명도 없어 애써 개발한 옥답이 우즈벡 원주민들에게 모두 넘어갔고 월 25달러의 연금에 의존해 어렵게 살고 있는 노인들은 한탄만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이곳에 지난 96년 입국한 박강윤 향우는 1년뒤인 97년 감초 기공공장을 설립하면서 ‘한-중앙아시아 교류진흥회’와 한-우즈 친선장학회, 국제문화교류협회, 한민족 청소년 교육문화협회를 이끌며 광양인의 긍지를 심고 있다.

“고향 분들 우즈벡에 오시는 길 있으시면 꼭 들렸다 가십시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