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야 ! 고맙다
단비야 ! 고맙다
  • 귀여운짱구
  • 승인 2008.05.08 09:11
  • 호수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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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 있는 작은 비탈에 드러난 볼품없는 황토와 잡초더미가 항상 마음에 걸렸었다.
그곳에 뭔가를 심어서 황량한 모습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그곳에 화려하게 피는 철쭉을 심기로했는데 고맙게도 연성이네가 많은 나무를 우리에게 주었다. 수백그루의 철쭉 나무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며칠을 두고 심었다. 볼품없는 나무 가지를 다듬고 웅덩이를 파는 일을 수차례 되풀이했다. 돌이 많은 산이라 웅덩이 파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내년이면 산 전체에 철쭉꽃이 활짝피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몸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나무 심기에 열중했다.

그리고 수도호스를 수십미터나 연결해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면서 물을 주었다. 그러나 산언덕 위로는 수압이 약해서 물은 생각만큼 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물호스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여러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물뿌리개를 들고 산을 올라 갈수도 없고, 날씨는 더워지는데…30 여도 가까이 오르는 더위를 겪으면서 걱정이 태산같았다. 이러다 힘들게 심은 나무 모두가 말라 죽지나 않을런지…그렇게 걱정하며 며칠이 지난후  기다리던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그렇게 고마운 적이 있었을까 ? 가뭄에 목말라하던 나무들이 흡족해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단비가 아니던가 ?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나 창밖의 빗소리도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었다. 녹음이 짙어가는 나뭇잎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올 여름 한철도 울창한 나뭇잎이 우리 안마당을 가득 메우는 그림이 그려진다. 밤새 조용히 내리던 비는 아침이 되면서부터 활짝 개였고 다시 화창한 날씨가 시작되었다. 산을 둘러보니 목말라하던 철쭉들은 비를 흠뻑 먹었는지 잎부터 생기를 머금고 싱싱한 기운을 자랑한다. 비 갠 날의 선명한 산처럼 기분좋은 하루다.

집 앞의 진입로인 다리 입구에는 번식력이 강한 등나무를 심어 아치형의 멋진 진입로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먼 산에서 힘들여 캐온 등나무를 정성스럽게 심었는데 며칠을 기다려도 도통 싹이 날 기미가 없어 다소 실망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 온 다음날 황급히 달려가 살펴보니 놀랍게도 큰 줄기 마디에서 아주 작은 새싹이 여럿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간절히 기다리던 새로운 생명을 발견하는 이 기쁨! 반가움과 신비로움이 온 몸을 휘감아돈다. 조급해하지말고 참고 기다리면 분명 좋은 소식이 온다는 것을 자연을 통해 배운다.

올해는 참 많은 나무를 심었다. 지난 겨울 이장이 가져다 준 왕벚쫓 나무 다섯그루가 올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웠고 기원농장에서 준 단풍나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있다. 고마운 사람들로부터 받은 나무들이 저렇게 훌륭하게 잘 자라주는 걸 보면서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그들을 바라보는 기쁨을 누린다.
봉강면 도로변에서 사온 남천도 봄을 기다렸다는 듯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지와 잎사귀를 내밀었다. 그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내가 오늘 심은 나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밀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을 키워본 사람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고 결실을 보는 즐거움도 바로 이렇게 자라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기쁨 때문에 논밭 터전을 꿋꿋하게 지켜가는 것일 것이다.
농촌에 살면서 이제서야 조금씩 자연의 섭리를, 꽃과 나무를 키우는 재미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심은 꽃과 나무들이 이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밀고 장차 큰 고목이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농촌에 사는 이유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