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기 교수가 고향에 전하는 남성학 이야기(2)
정채기 교수가 고향에 전하는 남성학 이야기(2)
  • 광양신문
  • 승인 2006.10.03 06:44
  • 호수 1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 잘하는 아이, 아빠에게 달렸다
정 채 기한국남성학연구회장딸사랑아버지모임공동대표 역임강원관광대학 교수, 교육학 박사진상면 금이리 외금마을 “아빠, 수이가 뭐 하는지 물어봐?” “그래, 수이야 너 뭐 하고 있어?” “응! 수이는 지금 인형을 가지고 놀아! 그리고..... (뭐 어쩌고 저쩌고 등등)” “그러면, 아빠는 뭘 할까? 수이가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나와의 관계로서, <수이>라는 이름의 여자 조카와 그 아이의 아버지인 남동생 두 父女 사이에서 정감 있게 오가는 대화 한토막이다. 이는 마치 짜고 치는 행복한 <고스톱 판>을 보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남동생은 탄복할 정도의 인내의 친절함으로 자기 딸의 자잘한 비위(?)를 맞추는, 그야말로 자상한 아빠의 진면목을 보이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게 무뚝뚝함을 없애보려고 노력했건만, 천성인지 어쩐지 별 수 없는 사내꼭지 맛을 물씬 풍기는 아들만을 키우는 내 입장에서, 이 두 父女의 대화는 ‘어쩐지 생경’할 뿐이다. 특히나 美聲(어린 여자 아이의 비음 섞인 가느다란 목소리)인 딸의 갖은 재잘거림에 보조를 기꺼이 맞추는 동생의 모습에, 괜히 두드러기가 솟는 것 같다(?). 한편 잘 먹지 않는 까닭인지, 다른 아이들 보다 마르고 게다가 밤잠까지 적은 딸아이가 제일 힘들게 하는 때가 새벽녘이란다. 부부 둘이 같이 직장 생활로 인하여 고단한 잠에 떨어진 새벽 시간, 잠시간이 길지 않아 일어난 아이(수이)의 깨우는 호출에 반응이 빠른 쪽은 거의 아빠 쪽이란다. 엄마 보다 아빠가 신경이 예민한 까닭이기도 하지만, 아빠 스스로가 깨어나기를 자처하는 것이기도 한 까닭에... 새벽 잠 없는 아이가 너무나 졸린 아빠를 깨워서 앉혀놓고 기껏(?)하는 말이라곤, “아빠 수이한테 뭐 먹고 싶은지 물어봐?” 란다. 내 같으면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말하는 자기에게 물어봐 달라고? 지금 장난하는 거야 뭐야? 이걸 쥐어 패? 아니면 말아?’ 할 텐데, 동생은 별 싫은 내색 없이(?) “그래 수이야 뭘 먹고 싶은데?” “응, (어쩌고 저쩌고)...” 그런 끝에 그 야심한 시각에 문 닫지 않은 슈퍼나 편의점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란다. 오, 맙소사! 이거 애가 문제야? 아니면 아빠가 지나친 거야?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남동생의 이 같은 배려성은 어제 오늘의 모습이 아니다. 지난 언젠가의 추석날, 자기 딸이 엄마 뱃속에 있던 중, 즉 제수씨의 배가 남산만 할 때의 일이다. 요란한 추석날의 점심을 물리치고, 식구들이 시골 고향집의 마루와 마당에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화창한 가을 햇볕이 내려쬐는 날씨 가운데,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의 정담은 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남동생이 두리번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찾더니 검정 우산을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것을 펼쳐댔다. 그 순간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가족들은 무척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쟤가 왜 저러나?’ 다들 뭐 그런 표정이었다. 특별히 나는 더 했다. 그 순간 즉 동생이 우산을 펼치자마자, 제수씨가 그 속으로 쏘-옥 들어가서는 자기 남편의 팔을 꽉 끼는 가운데, 둘이서 유유히 마당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못하여, 아니 너무도 궁금한 끝에 내가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정동환! 지금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왜 우산을 쓰고 그러니? 그리고 제수씨랑 지금 어디 가니?” 라고 말이다(나머지 식구들도 물어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인 표정들이었다). 그러자 동생은 너무도 태연하게 말했다. “응, 이 사람이 화장실 가고 싶다 해서, 저 아래채의 화장실에 데려다 주는 거야. 그리고 우산은 햇볕에 얼굴 타서 기미 생기는 것 막아주려고 씌워주는 거야!” 동생의 이 같은 설명을 듣는 순간, 식구들 중 일부는 앉아 있는 마루에서 데굴데굴 구르지를 않나, 마당에 서있던 일부는 땅 구르기를 하지를 않나 등등 그야말로 요절복통이었다. 그리고는 이구동성으로 “야, 너 혼자 용 되라!” “그래 너 혼자 마나님 사랑에 충성 다해라!” “참 지극 정성이다” 그리고 일부는 “와, 닭살이다. 징그럽다” 라며 자기들의 팔을 걷어 부치며 닭살(피부)을 깎아내는 시늉을 해댔다. 이는 주로 남편들의 반응이었고, 반면 여자인 아내들의 반응은 달랐으니, 이러했다. “와, 부럽다!” “나도 저런 대접 받아 봤으면...” “여보, 당신도 봤지? 동환이 하는 거! 본 좀 받으셔, 본 좀!” 하지만 일부 누구의 어떠한 비난(?)에서도 <악의>를 찾을 수 없는 만큼, 이 제수씨를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눈치들이었다. 여기서 참고로 꼭 밝혀야 할 것은, 동생이 우산을 펼친 지점에서 우산을 펼치고 가는 목적지인 화장실 까지는 불과 30미터쯤이다. 와! 아무리 가을 햇볕이 따갑기로서니, 30미터쯤 거리의 햇볕에 피부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그로인해 생기는 기미가 대체 얼마나 될까 궁금타! 아무튼 동생이 조금 오-버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큰 유쾌한 해프닝이었다(참고로 동생 부부는 결혼 순간부터 약 3년 동안, 애절하게 떨어져 있었던 주말 부부였다!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지...). 평소 딸에게 ‘다정다감한 대화나 스킨-쉽 혹은 제스쳐’를 얼마나 하는지, 혹시 대화를 한답시고 교육이나 강연을 넘어선 <설교>를 늘어놓지는 않는지, 또 정반대로 ‘침묵이 금이다!’ 라는 구절에 속아 여전히 <냉담한 돌부처>를 연출하지는 않는지 등이 궁금하다. 옛말에 ‘無物이면 無誠이다!’ 즉 ‘뭐(물질)가 없으면 성의가 없다’라고 했다. 이제 조금 변형을 해볼까요. ‘無言이면 무성’ 즉 ‘말’이 없으면 ‘성의(마음)’가 없는 그런 뜻이다. 이제부터라도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바로바로 그것도 겉으로 풍부하게 정확하게 표현하는 <수다쟁이 아빠>가 되기를 간곡히 권한다. 딸의 유창한 언어 구사는 일찍부터 딸에 대응하는 아빠의 ‘친절한 수다’에 기초하여 비례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입력 : 2005년 10월 13일 11: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