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애인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
한 장애인 가장의 안타까운 죽음
  • 이수영
  • 승인 2006.10.20 14:36
  • 호수 1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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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겪다 교통사고로 사망
동료 장애인을 위해 항상 웃음을 주고 앞장서던 당당한 모습은 어디가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다니..." 21일 오전 중동 사랑병원 장례식장. 장애인 가장 김영규(44.광영동)씨<사진>의 빈소를 다녀온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광양지회 회원들이 생전 김씨의 모습 생각에 하염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던 김씨는 지난 19일 밤 8시3분께 광양읍 죽림리 호암마을 앞 길에서 편도 2차로를 건너려다 1톤 포터 차량에 치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비장애인이었던 김씨가 지체장애 3급으로 청전벽력을 만난 것은 지난 2001년. 모 회사에 다니다 척추를 다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장애인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차가운 사회의 냉대 그 자체였다. 딸린 자식들을 위해 일자리를 백방으로 찾아 봤지만 몸이 불편한 그를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이에 김씨는 호구지책으로 자신이 사는 광영동에서 붕어 빵도 구워봤지만 다섯 가족이 생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씨는 국가에서 행하는 기초생활보장수급 신청도 해 봤지만 광양시로부터의 답변은 부모님의 재산이 있다해서 그마저도 대상이 안된다는 현실을 알게된 것에 최씨는 그만 좌절하고 말았다.

경제적 자립능력이 없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 오던 김씨는 최근 자신이 인권위원으로 있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광양지회에 구직 신청서를 또다시 제출한 상태였다.

이날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김씨는 호주머니에서 현금 4천원이 발견됐다. 하지만 그는 9천원이 있었던 셈이다. 사고 당일 저녁 7시 자신이 속한 장애인협회 모임자리에서 동료 장애인 회원 자녀에게 용돈으로 쓰라며 5천원을 건넜기 때문이다.

동료 장애인 김모(44)씨는 "지체장애인협회 인권으로 비록 가정은 힘들었지만 늘 밝고 행사때마다 적극 참여해 장애인이 아니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며 "또 한명의 장애인 동료가 사회의 현실 앞에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며 울먹였다.

김씨의 시신은 21일 오전 사랑병원을 떠나 오전 11시6분 광양영세공원에서 화장돼 납골당에 안치됐다.
 
입력 : 2005년 0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