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네 동네 이야기
'한' 이네 동네 이야기
  • 광양신문
  • 승인 2006.09.13 13:12
  • 호수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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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렬 목사 / 마하나임 커뮤니티 교회
승승장구하고 제금 나간 ‘북’이 동생은 있는 돈 다 탕진하고 집안은 이래저래 궁색하다. 쪼들린 살림에가족들이 고생이고 가출하는 얘들도 한둘이 아니다. 괴로운 심정에 가끔 동네를 시끄럽게 떼를 쓴다. 그럴 때 마다 형 된 ‘한’이는 동분서주 눈치 보며 하루속히 살림을 합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애써 싸움들을 말린다.

윗집 ‘중’가네는 식구가 많다. 아마도 동네에게 제일 많지 싶다. 식구도 많은 만큼 집도 마당도 널디 넓다. 뭔 비밀이 그리 많은지 담은 동네에서 제일 높다. ‘중’가네는 ‘북’이 동생과는 각별한 사이다. 그래도 어려울 때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속내는 쉬이 드러내진 않는다.

요즘엔 ‘한’이네도 ‘중’가네랑 이러저러한 일들을 서로 돕고 있기도 하면서 관계를 터가고 있긴 하지만 오래전 조상 적 앙금은 불쑥불쑥 악재로, ‘북’이네랑 ‘한’이네 조상이 자기들 집 머슴이었다고 들쑤시기도 한다.

그래서 여전히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 있기도 하다. 넓은 마당이 잘 관리되지 않아서 요즘엔 흙먼지가 많이 일어서 아랫집에 사는 ‘북’이네랑 ‘한’이네 집에까지 먼지가 날려서 고생이다. 먹고 살기 바쁘다고 미처 마당관리가 제대로 안된 ‘중’이네 집 안방까지! 흙먼지로 고생하자 이젠 여기저기 도와달라고 한다. 괜히 미안한척하며 손안대고 코를 풀어볼 요량이다.

내후년에는 그 집 마당에서 동네잔치가 있는데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분주해 지나 보다.

물건너 ‘일’가네는 동네에서 유명한 집이다. 오래전에 온 동네를 싸움판으로 만들고 칼부림을 하며 제 잘난 맛에 한참 승승장구하다가, 기어이 임자(‘미’가네)를 만나서 패가망신할 뻔  한 집이었지만, ‘북’이네가 ‘한’이네 집에서 제금 나갈 때 있었던 싸움 덕에 살림밑천을 단단히 한몫 챙겨서 지금은 온 동네에서 알부자로 소문나 제법 큰소리깨나 치는 집이 되었고, 급기야 ‘미’가네도 이제 함부로 못할 집이 되었다. ‘북’이네가 제금 나가기 전까지 오래도록 ‘한’이네는 바로 이 ‘일’가네에서 머슴을 살아야 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와서 ‘한’이네 전답이며 모든 것을 다 자기네 꺼라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한’이네는 억울한 머슴살이를 해야 했다.

간신히 머슴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일’가네는 아직까지도 제 욕심 버리지 못하고! 요즘엔 또 냇가 한켠에 있는 ‘한’이네 밭떼기 하나를 야금야금 자기네 꺼라고 한다. 그쪽에서 고기도 제법 나고 물속에 좋은 게 있어 이래저래 자기들에게 필요한 모양이어서 또 잔꾀를 부리기 시작한다.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한’이네 머슴살이를 청산하는데 도움을 줬던 ‘미’가네는 멀리 산다. 헌데 ‘한’이네 집안싸움에 너무 깊이 개입하다가 나중에는 ‘한’이네를 식모쯤으로 여기는지 사사건건 간섭이다.

‘한’이네는 처음엔 도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좀 지나치다 싶고, 급기야 ‘미’가네의 속셈이 의심도 되지만 그냥 털어 버리기엔 관계가 너무 깊다. ‘북’이네는 진즉 ‘미’가네와 담을 쌓고 제금 나가서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살다가 ‘미’가네가 싫어하는 ‘핵’을 재배하는 바람에 요즘엔 동네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미’가네는 이 동네에서 지금 제일 힘세고 돈 많은 집안이다.

그래서 좋든 싫든 ‘미’가네가 동네 어른흉내를 내고 가끔 자기네 맘대로 일을 하기도 해서 동네 여러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오래전 도움을 주었던 일마저! 도 이젠 빛이 퇴색되어가고 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이래저래 좋은 일을 많이 하더니 요즘엔 살림이 어려워지는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멀리 ‘이’가 동네에서는 요즘 맨날 싸운다. 힘자랑을 하는 것인지, 선산을 빼앗겼던지, 맨날 티격태격 싸우고, ‘미’가네는 거기까지 힘자랑을 하고 다닌다. 자기가 동네 이장이나 되는 것처럼 제 마음 내키는 대로다. 가끔 어른들 말도 안 듣고 돈과 힘으로 밀어 부칠때면 혼나는 동네 아이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동네에서 ‘한’이네는 치어 사는 느낌이다. ‘북’이 동생이랑 살림을 합하려면 살림이 더 넉넉해야 할 판인데 ‘북’이 동생은 그런 형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집을 부린다. 거기다 싸움 말리는 일까지 맡고 있는 판이다. ‘중’가네가 흙먼지 일으켜도 미우나 고우나 그 집하고 일을 좀 해야 살림살이라도 장만할 모양이다.

그런 일 저런 일 바쁜 와중에 ‘일’가네의 쌩짜에 괴로운 심정 이루 말할 수 없다. 막상 싸움을 하자니 아직 힘에 부치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갔다가는 ‘일’가네와 함께 벌인 살림도 만만치 않아 속 앓이만 늘어간다. ‘미’가네와의 사이도 예전 같지 않고 이젠 도움을 주기보다 이전의 도움을 빌미로 여러 가지 손해를 보면서도 거래를 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한’이네가 제대로 살아가려면 부족한 살림, 좁은 집에서 자식농사 제대로 하는 길 밖에 없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머슴살이 벗어나자마자 제금 나간 동생으로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지만 간신히 발악해서 살림 일으켜 놓았더니,

어느 날 가난에서 벗어난다 싶더니 분수도 모르고 함부로 써댄 빚이 늘어서 이 동네 저 동네 돈 빌리러 다니며 간신히 망하는 것은 막고 일어나려고 하는 판인데,

요즘엔 땔나무 값이 또 심상치 않게 올라 악재가 겹치는 판이다. 집안이 조용해야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할 터인데 어른들 싸움에 공부해야 할 아이들도 뒤숭숭하다.

일 안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도 늘어가고, 내우외환이 겹친 상태다. 그런다고 넋 놓고 그냥 망해가는 꼴만 보고 핑계하고 있는다는 것은 더더욱 못난 짓이다.

그래도 희망은 너희들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서 나보란 듯이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동네가 제대로 되고 더불어 살 수 있도록 다 품어야 한다. '한'이네가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도 이 동네에 살아남아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 날이 꼭 오리라 믿는다.
 
입력 : 2006년 0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