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 때면 내게 전화를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그 분야에서 활발하게 강의를 하고 있는 상담 전문가인데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는 옛말처럼 그도 답답하고 심란한 일이 쌓여 누군가 하소연할 사람이 필요하면 먼 곳에 있는 내게 전화를 한다.
얼마 전에도 마음에 쌓인 답답함을 풀어놓던 그에게 내가 아들과 있었던 일을 툭 던지자 “제가 필요한 게 바로 그거예요.”라며 깔깔 웃는 것이었다.
나는 반응이 늦다. 필요 이상으로 생각이 많다는 얘기다.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생각하고 또 생각을 거듭한 후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타이밍을 놓치거나 나중에 가서 속앓이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얼마 전,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사람에게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나에게 “불편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뭔가 해 봐야 되지 않겠냐...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거냐...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등 책임을 나한테 돌리는 투로 얘기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생각이 무척 복잡해졌다.
전화를 한 그 ‘누군가’는 수십 년을 알고 지내는 동안 나를 함부로 대한 적도, 서운하게 한 적도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이게 뭐지? 그럼, 사과를 받기 위해 내가 뭘 해야 된다는 말인가? 관계 회복을 위한 뭔가는 잘못한 쪽에서 해야 되는 거 아냐?”이런저런 생각으로 며칠 속을 끓이다가 아들과 밥을 먹으면서 “이런 전화를 받았는데 그사람은 무슨 마음으로 이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엄마는 며칠 동안 생각이 복잡하고 힘들었노라”고 얘기했더니 아들이 대뜸 “아니, 그걸 그냥 듣고 있었단 말야? 그런 얘기는 그쪽에다 하라고 맞받아쳤어야지!”라며 펄펄 뛰는 것이었다.
나보다 더 펄펄 뛰는 아들 녀석이 어이없어서 한참을 보다가 “너는 교사라는 놈이, 맞고 들어온 아이한테 대고, 같이 맞받아쳐야지 그냥 맞고 들어왔냐고 되레 쥐어박아야 되것냐? 너, 학생들한테 그렇게 해?”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 둘이 동시에 폭소가 터졌었다.
그 후 내게 전화를 했던 ‘누군가’에게 이런 내 마음을 얘기하고, 피해를 당한 쪽에 일방적으로 용서나 사랑을 강요하면 또 다른 상처가 된다는 내용의 꽤 긴 대화를 했었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한다. (특히 종교인들)
그러나 공의가 없는 용서가 진정한 용서인지, 정의가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사랑과 용서의 본질은 외면한 채 입술만의 구호를 남발하는 것은 약자의 마스터베이션이고 비겁한 침묵에 대한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방향을 제대로 잡자.
진정한 평화는 정의로울 때 완성되며 진정한 사랑은 공의로울 때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내가 믿는 그분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다시 생각하면서 진짜 정의와 공의로운 세상을 살고 싶다. 그리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가해자가 자신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용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데 무엇을 용서하라는 말인가? 오죽하면 한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과이불개(過而不改)겠는가. 잘못한 것은 좀 고쳐라, 제발! 진심으로 새해 소망은 털고 가고 싶다. 홀가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