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한국노총 망루농성 진압 중 ‘유혈사태’
경찰, 한국노총 망루농성 진압 중 ‘유혈사태’
  • 김성준 기자
  • 승인 2023.06.03 15:50
  • 호수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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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과잉진압”↔ 경찰 “정당집행”
위원장 체포하며 ‘뒷수갑’ 논란도
△지난달 31일 새벽 광양제철소 앞에서 망루농성 중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사다리 차를 동원해 접근하고 있다. (제공=시민제보영상 갈무리)
△지난달 31일 새벽 광양제철소 앞에서 망루농성 중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사다리 차를 동원해 접근하고 있다. (제공=시민제보영상 갈무리)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농성을 이어오던 한국노총과 진압하려던 경찰이 충돌하며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한노총은 ‘과잉진압’을 주장하며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지만 경찰은 ‘정당한 대응’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전남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5시 30분쯤 광양제철소 앞 도로에 설치된 7M높이 망루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경찰관 6명이 사다리차 두 대를 타고 올라가 김 사무처장을 진압하고 지상으로 끌어내려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 사무처장이 경찰의 접근을 막기 위해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저항하자 경찰은 경찰봉으로 제압을 시도했다. 김 사무처장은 경찰이 휘두른 경찰봉에 머리를 맞아 부상을 입고 순천성가롤로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진압과정에서 경찰 3명도 다쳤다. 

전날 경찰은 고공농성 저지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을 체포하면서 ‘뒷수갑’을 채워 ‘과잉진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남 경찰청은 설명자료를 내고 “뒷수갑은 ‘수갑 등 사용지침’상 피의자가 저항하는 경우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적법한 장구사용”이라며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불법집회에 대해 현장 해산 조치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하고, 특히 경찰관 폭행 등 공무집행 방해에는 즉시 현장검거하고 신속하게 사법처리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지난달 30일 체포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이틀 후인 지난 2일 김준영 사무처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한편 포스코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지난해 4월부터 임금 교섭,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촉구하면서 천막농성을 벌여왔다. 400일이 넘도록 농성을 이어왔으나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장기화되자 금속노련이 최근 집회에 합류해 지난달 29일 밤부터 망루를 설치하고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31일 광양경찰서앞에서 “폭력 경찰 규탄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노총이 지난달 31일 광양경찰서앞에서 “폭력 경찰 규탄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노총, 기자회견 “폭력 경찰 규탄”

농성이 유혈사태로 번지자 한국노총은 곧바로 반응에 나섰다. 사태가 벌어진 날 오후 광양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탄압 폭력만행”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충재 한국노총 부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이 노동조합을 적으로 간주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분노하며 규탄한다”며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이 부위원장은 “김만재 위원장을 5~6명이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무릎으로 목 부위를 짓누른 상태에서 뒷수갑을 채우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진압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지난 2020년 미국 경찰이 흑인 청년 故 조지플로이드를 진압하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규탄했다.

이어 “경찰의 수갑 사용 지침에는 도주나 폭행, 자해 등의 우려가 높다고 판단될 때 뒷수갑을 사용하도록 돼 있다”며 “인권 침해 소지가 높아 뒷수갑은 엄격하고 제한하고 있고 무릎으로 목부위를 짓누르는 행위는 살인행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그는 “김준영 사무처장을 경찰이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연행됐다”며 “인권을 짓밟고 강제 연행한 경찰의 폭력 만행을 규탄한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정권의 노동탄압 중단 △폭력만행 책임자 처벌 △포스코의 노동3권 즉각 인정 △경찰 사과 및 강제 연행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지난 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노동위 및 국회의원들이 광양제철소 앞 농성 현장을 방문했다.
△지난 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노동위 및 국회의원들이 광양제철소 앞 농성 현장을 방문했다.

지역사회와 정치권까지 번져

한노총과 경찰이 ‘과잉진압’과 ‘정당한 법 집행’으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가운데 지역사회를 넘어 정치권까지 확산되고 있다. 

광양YMCA, 광양YWCA, 광양참여연대, 광양환경운동연합 등 4개 단체로 구성된 광양시민단체협의회는 지난 1일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단체는 “불가피하게 경찰봉을 사용했다는 경찰의 주장도 영상을 보면 (정글도는) 현수막을 철거하거나 (쇠파이프는) 경찰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으로 확인된다”며 “곤봉을 맞고 쓰러져 저항할 수 없는 노동자를 상대로 수차례 곤봉을 휘두르는 장면은 노동자를 대하는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유혈사태를 만든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한다”며 “노동자의 권리인 노조활동을 불법으로 몰아가는 정부를 규탄하고 이번 사태가 발생하도록 방조한 포스코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동용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도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한마디에 집회현장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윤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의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입을 막겠다는 것”이라며 “목적이 무엇이든 국민의 입을 막고 폭력을 행사한 정권은 민심의 심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은 본인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정부의 역할은 국민을 지키는 것이지 국민을 때려잡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반면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정글도와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노조를 더 어떻게 친절하게 제압해야 하는 것이냐”며 경찰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노동존중실천국회의원단(위원장 박홍배)를 비롯한 김주영·소병철·서동용·이수진·이형석 국회의원은 지난 2일 광양을 방문해 농성현장을 둘러본 후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등을 위해 광양경찰서, 포스코, 고용노동부 여수지청 등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