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동시이야기] 물 이야기 4-2 5. 물의 여행
[융합동시이야기] 물 이야기 4-2 5. 물의 여행
  • 광양뉴스
  • 승인 2023.09.22 18:32
  • 호수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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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신 동시작가

구름과 휠체어

잠든 동생의 머리맡 스케치북에

구름 위에 휠체어가 놓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엄마도 나도

더 이상 휠체어를 밀지 않아도 되겠다

서울은 저 북쪽 하늘 아래 있다고

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달려야 한다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구름 위 휠체어라니

이제는 맘껏 날아다닐 수 있겠다

엄마 없이도

나 없이도

아주 아주 멀리까지

이제는 맘껏 날아다닐 수 있겠다

 

할머니의 휠체어

“이게 우리 어머니께서 남기신 거란 말씀이에요?”

“그렇다니까요. 이게 휠체어에서 나왔다니까요. 분리수거를 하려고 뜯다가 앉은 자리 밑에 덧댄 주머니가 있기에 열어보니 거기에 숨겨두셨더라니까요.”

이른 아침에 고물상 주인 아저씨께서 할머니께서 남기신 것이라며 통장과 도장 그리고 편지를 가지고 오셨어요.

“이럴 수가! 이게 얼마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억. 아니 억이라니!”

아빠는 통장을 펼쳐보더니 말을 잇지 못하셨어요.

“암튼, 고맙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이 많은 돈을 찾아주셨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아빠는 물론 우리 식구 모두 들뜬 마음에 몇 번이고 감사의 말씀을 드렸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시구나. 마음씨도 곱고 정직한 분이시구나!”

엄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셨어요.

“편지에 뭐라고 쓰여 있어요? 얼른 큰 소리로 읽어보시라구요.”

누나가 재촉했지만 아빠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입을 여셨지요.

“이 돈을 모두 000대학에 장학금으로 기증하라고 하셨구나.”

“장학금으로 기증요? 말도 안 돼! 어떻게 우리랑 의논 한마디 없이 결정했데요?”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아빠께 불만을 쏟아부었어요.

우리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가 오늘로써 5일째 되는 날이에요. 할머니는 93세에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상설 시장에서 난전을 펴놓고 채소장사를 하셨어요. 봄이면 쑥이나 냉이 같은 봄나물, 여름이면 상추나 가지 같은 여름 채소, 가을에는 감, 배 같은 과실, 겨울에는 마른 나물이나 하우스 산 채소 등을 파셨어요. 할머니는 도시 외곽지대인 농촌에 사시면서 손수 가꾼 채소나 이웃집에서 싼값에 산 채소 등을 들고 나오셨어요. 시내버스를 타고 시장입구까지 와서 휠체어를 끌어내리고, 그 위에 채소들을 실어와 판을 펼치셨어요.

그렇게 사시는 할머니를 보고 아빠와 엄마는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어요. 구부정한 허리로 휠체어에 의존하고 다니시는 모습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답니다.

“자식 얼굴 봐서라고 이제 그만하시고 좀 편히 사시라구요.”

아빠가 남들 보기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말까지 하시면서 말리셨어요.

그렇게 애지중지 모은 돈을 몽땅 장학금으로 기증하겠다니 당연히 아빠 엄마는 물론이고 누나와 나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죽은 동생 몫이라는군. 동생처럼 등록금을 못 내는 아이들을 위해 써 달라고 하셨구먼.”

아빠는 복받치는 마음 때문인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셨어요.

아, 그렇구나! 우리들은 그때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빠의 동생, 그러니까 삼촌은 000대학교 컴퓨터학과에 가고 싶어서 두 번이나 재수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거뜬하게 합격하여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고 매우 들떠 있었답니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 전체를 다 챙길 수가 없었답니다. 우리 아빠도 제대하여 다시 대학교를 다니게 되어 더욱 어려웠답니다.

삼촌은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공사장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고 말았답니다. 급히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답니다.

할머니는 삼촌이 입학금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사셨던 모양입니다. 시장 길바닥에서 돈을 모은 것은 삼촌 때문이었나 봅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거실 가운데에 우두거니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