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패자 부활전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
[교육칼럼] 패자 부활전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
  • 광양뉴스
  • 승인 2023.10.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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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전 광양여중 교장/교육칼럼니스트
김광섭 전 광양여중 교장/교육칼럼니스트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적당한 시기가 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여성 기자도 제때 대학을 갔는데, 이 기자는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를 그토록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당신 딸의 적성을 전혀 모르고 ‘미대는 날라리들이 가는 곳’이라 안 된다는 이유로 모 여대 사범대학에 들어갔다. 

원하지도 않는 학교에 갔으니 공부는 뒷전이 된 것이다. 마치 영화 ‘건축학 개론’의 수지처럼 4년 내내 책 한 권을 가슴에 안고 다니면서 지금의 남편과 연애질만 했다고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공부는 20여년 후. 모 전문대학 사진과에 입학한 것이다. 딸 같은 학생들과 경쟁하니 체력도 감각도 뒤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꿈꿔 왔던 열정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중간고사 전날은 고시원에서 밤새워 공부하고, 추운 겨울엔 누비바지에 털모자를 쓰고 빌딩 옥상에 올라가 새벽까지 손을 호호 불며 셔터를 눌러대고 작업을 하여 행복하게 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이처럼 ‘공부의 때’라는 것은 ‘해야 할 때’가 아니라 ‘하고 싶은 때’였던 거다. 미국에 있는 친구 아들은 대학 갈 이유가 없다며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어느 날.‘아무래도 공부는 꼭 해야 되겠다’ 말하더니 집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우리나라 방송통신대학 같은 곳)에 들어가 2년 동안 죽어라 공부한 후, 버클리대로 편입하고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잘 산다고 전해주었다.

우리나라도 대학이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청년을 위한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원하면 언제든 입학할 수 있게 그 문이 365일, 24시간 늘 넓게 열려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요즘 이 사회는 묻지도 않고 폭력을 쓰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잔인한 사건이 계속되는 것일까.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일정한 직업도 없으며, 무한 경쟁 교육시스템에서 낙오된 중졸, 중퇴가 대부분이다. 의미 없는 점수, 공부가 싫다하여 배움을 포기하니 안정된 직장 얻기도 힘들고, 그로 인해 사회에선 고립되었고 곱지 않은 시선의 가족과도 불화가 당연하다. 미래도 출구도 없는 삶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 누구라도 막막할 터인데. 사회 곳곳에 널려 있는 이런 ‘사회적 외톨이’들의 예측 불가능한 범죄에 노출된 것이다. ‘예측 불가’라 더 위험하다. 막다른 골목에 서서 자해하는 맘으로 폭력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그들이다.

우리 사회는 경쟁이 극심한 사회이다. 무한경쟁에서 실패한 ‘패자’들에게 배움을 통한 ‘부활’의 기회를 주자. 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범죄에 빠질 확률이 더 높아진다. 범인을 잡고, 가두고 먹이고 입히고 교화시킬 돈으로, 잠재적 범인이 될 수도 있는 그들을 위한 교육에 확실히 투자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젊다. 그들에게 이런 기회를 다시 준다면 어린 나이에 멋 모르고 떠난 배움의 터전이 그리워 죽을 각오로 공부를 시작할 수도 있을거다. 

곧 수능을 치를 시간이 오고 있다. 이미 포기한 자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교육시스템구축에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지금도 보이지 않게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이를 지켜보면 가슴이 매우 아프다.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임을 인정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