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승에게서 함께 배우던 어느 날 친구가 “바람이 부니 나뭇가지가 움직이고 있구나!”라고 앞에 있던 친구에게 말하니, 평소에 친한 그 친구가 “저건 바람이 움직이고 있는 거야”라며 서로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언쟁으로 번져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스승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승은 “바람이 움직이든 나뭇가지가 움직이든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자네들처럼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자네들 마음의 움직임이라네. 그러니 자네들 마음속 어디에서 바람이 부는지나 잘 헤아려 보게..”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마음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의견이 갈릴 때가 있고 마음에 상처가 된다. 사소한 것이라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생명만큼은 우주적 가치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의대증원 문제는 환자의 소중한 목숨을 둘러싸고 일어난 갈등이기에 많은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다. 누가 승자이고 패자를 떠나 진료 현장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은 예쁜 옷에 명품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예쁠 수도 있지만, 검게 탄 노동자의 땀방울 맺힌 삶의 자세가 아름답고, 아픈 사람에게 치료하는 삶이야말로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슈바이처 박사는 우리 국민이라면 모두가 아는 인물이다. 그는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의학공부를 시작해 1913년 아프리카에 정착하였다. 1965년 가봉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고 의술로 사랑을 실천했다.
그의 아름다운 삶의 빛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 1952년 마침내 노벨평화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노벨상위원회는 아프리카에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친 슈바이처에게 찬사를 보내며 그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을 알리고, 시상식에 꼭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사의 영예로운 수상 소식을 들은 세계인들은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연설을 들려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노벨상위원회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노벨상위원회는 “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하는데 왜 거절하십니까?” 주변 사람들과 노벨상위원회는 그가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했지만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그런 과분한 상을 준 것은 고맙지만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제가 상을 받겠다고 며칠이라도 진료실을 비운다면, 저를 기다리는 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에게는 상을 받는 것보다 이곳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돌볼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이 말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위한 영광스런 상보다도 인간의 생명 사랑이 앞서 있는 슈바이처 박사야말로 오늘날 이기적인 생각으로 남을 배려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남이야 어찌되건 자기 집단만 잘 되길 바라는 사회. 남을 배려하지 않고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이 같은 이기적인 사회는 모두가 다 손해보고 힘들어질 뻔하다. 스러져 가는 약자인 이웃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면서 조그만 사랑이라도 실천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