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6건) Ebook (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광양김협동조합, 지역기반 정책연계 창업지원사업‘선정’ 광양김협동조합, 지역기반 정책연계 창업지원사업‘선정’ 광양김협동조합(이사장 김재신)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마을과자치협동조합이 각각 주최·주관한‘2020 지역기반 정책연계 창업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돼 2250만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이번 사업은 주민중심 사업체를 통해 지역에 필요한 서비스 제공 및 일자리 창출 등으로 지역경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추진하는‘예비 사회적기업가’의 창업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이다.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마을과자치협동조합은 이번 공모에 신청한 사업을 대상으로 서류심사, 심층면접, 발표평가를 거쳐 최종 11개 사업을 선정했다.전남도에서 유일하 시민기자 | 광양뉴스 | 2020-06-05 15:57 조동래의 우리고장 문화탐방기 6. 봉강면 조동래의 우리고장 문화탐방기 6. 봉강면 지형과 위치 봉강면은 광양읍을 중심으로 서북쪽에 길게 형성돼 있고 동쪽은 옥룡면과 인접해 있다. 서쪽은 순천시 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남쪽은 광양읍과 접해 있어 석사리ㆍ지곡 주민들은 생활 터전이 광양읍민과 같은 조건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지형으로 인해 도로 마저 개울을 따라 남북으로 외길이고 구례와 내왕할 수 있는 달뜨기 재(峙)가 있었으나 지금은 터널을 만들고 포장도로로 변했다. 석사리는 앞 구 도로를 이용해 서쪽은 한양으로 가는 길이었고 관리들이 취임할 때 영접과 퇴임할 때 송별하던 서소정(西笑亭)이 있다. 이는 도로 곁이 본 위치였으며 조금아래 입비《현감 강석영 영세 불망비》가 있으니 광양의 관문임이 확실하다. 역사적 발전과 생활상 봉강면 서석 마을에서 구석기시대 문화·스포츠 | 광양뉴스 | 2013-10-07 09:28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와우마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와우마을’ 와우, 유년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 가야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리뻗은 산등성이의 맨 끝부분 남쪽바다와 맞닿은 마을이다.와우 달동네를 올라가는 언덕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중턱에 이르기까지 블록이 쌓이듯 세워지던 오두막들과, 경사가 완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심어놓았던 봉숭아 그리고 꽃들. 여름이면 손끝에 붉은 물을 들이려 돌멩이로 찧고 얼어붙은 논 위에서 지치도록 탔던 썰매. 성냥개비로 아버지 속옷을 태워먹기 일쑤였던 불장난 그리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던 익숙한 시골 풍경들.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흑백의 추억들이다. 와우는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을 떠오르게 해 줄 단 하나의 흔적도 가질 수 없다. 와우는 지금 사라져가고 있다.와우 달동네에 올라 동네를 바라본다. 논농사, 밭농사를 생업 삼아 순박하게 살아온 이웃동네. 광양人 | 정아람 | 2013-07-01 09:17 "김 시식에 관한 실록 편찬 중” "김 시식에 관한 실록 편찬 중” “우리나라 각종 연구원자료나 규장각등 모든 자료에 따르면 여익 할아버지께서 김을 전국 최초로 양식하신 것이 나와 있습니다”지난해부터 김시식지유적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김옥현 회장은 “역사적 고증을 통해 김 시식에 관한 실록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 이미 초고가 완성됐다”며 “연말쯤 실록이 완성되면 도서관등 각종 기관 배포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할아버지께서 김 양식을 시작함으로써 식생활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그동안 후손들이 이를 크게 기리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실록이 만들어 지면 할아버지의 공을 널리 알려 홍보 하겠다”고 약속했다.김 회장은 또 “현재 김시식 유물 전시관과 박물관 시설이 낙후되고 미비점이 많아 광양시 관광코스에도 빠져있는 등 문화·스포츠 | 모르쇠 | 2007-11-22 09:16 백운산! 그 풍성한 산물 백운산! 그 풍성한 산물 서울에 가서 보면 ‘ㅇㅇ원조 설렁탕집’‘ㅇㅇ원조 족발집’하는 간판이 가끔 눈에 뛴다. 음식 문화가 발달하여 식당마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맛의 경쟁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 역사성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전략인 것 같다.광양에는 원조라 할 수 있는 전국의 1번지 산물이 다섯가지나 된다. 골이수, 밤, 매화, 불고기, 김이 그것이다. 이들이 일찍부터 광양에서 명성을 떨쳐 전국의 1번지가 된것은 선각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백운산이 북쪽을 가로 막고 그 줄기가 마을 마다 뻗어 내렸기 때문에 기후가 온화하고 토양이 기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광양은 골이수 1번지이다. ‘광양시 나무’로 지정된 고로쇠 나무는 백운산의 해발 600~800m에 자생하는 나무로 뼈를 이롭게 한다는 골이수를 채취하는데 신경통을 기고 | 귀여운짱구 | 2007-09-06 10:00 나말여초 사회변동기 변란 피해 광양 정착 나말여초 사회변동기 변란 피해 광양 정착 우리지역 문화를 찾아서 ‘광양김씨’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시인이며 특히 고시(古詩)에 능해 해동 제일이라는 칭호를 얻은 김황원의 본관이 광양으로 그가 광양김씨 시조라고 돼 있다. 또 광양시지에는 김황원(金黃元)은 1045년(고려10대 정종11년)지금의 봉강면 석사리에서 태어났고 1117년(예종 12년)72세의 일기로 생을 마친 것으로 적혀 있다. 자, 그럼 광양김씨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본관을 광양으로 정해 이곳에서 문벌귀족으로 한시대 뚜렷한 족적을 남겼는지 각종 문헌을 통해 어제 오늘의 그들속으로 들어가 보자. ■ ‘광양김씨’ 그들은 누구인가? 신라사회 변란을 피해와 정착 광양김씨는 나말여초(신라후기~고려초기)사회변 문화·스포츠 | 지리산 | 2007-02-14 23:21 처음처음이전이전12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