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와 학벌·학력 지상주의 신앙
미네르바와 학벌·학력 지상주의 신앙
  • 광양뉴스
  • 승인 2009.01.21 18:41
  • 호수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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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 석 태 새삶교육문화연구원장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고향은 이태리 로마이다. 그녀가 오랜 잠을 깨고 멀리 한반도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작년 여름에 미국이 퍼트린 금융 전염병이 대한민국을 강타하자 그 병인, 처방을 두고 이명박 정부의 재경부를 비롯해 경제계, 학계의 소위 내로라하는 권위자(pundit)들이 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백약이 무효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처방이 엉터리이었고 병세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이변이 일어났다. 인터넷에서 미네르바가 날개를 퍼덕이고 처방을 내 놓으면서 국민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미네르바는 이름 그대로 확실히 ‘지혜’의 신이었다. 그녀는 족집게였다. 인터넷 세상의 네티즌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그의 처방을 박수갈채로 맞이했다.

문제가 발생했다. 대한민국에 경제 대통령이 둘 존재하게 된 것이다. 747(7% 성장률. 4만$ 국민 평균소득 성취. 세계 7대 강국 입성)을 내세우고서 당당히 청와대의 권좌에 앉아  있는 이명박 대통령을 제치고 실력으로 맞선 또 하나의 경제 대통령이 온라인 세상에 탄생했으니 이명박 정부가 발칵 뒤집힌 것이다.

그에 따라 이 정권의 앞잡이들인 어용 언론기관이 들고 일어났다. 벌집 쑤시듯 연일연야 야단법석을 떨면서 이 온라인 경제 대통령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미네르바의 고향인 로마에까지 갔다 왔다나. 이건 내 공갈이니 믿지 말라.

대한민국 정부 당국과 어용 언론계가 전력을 투구해서 그의 정체를 캐어보고서 내린 첫 결론이 “미네르바가 ‘가짜’일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왜냐 하면 그 글을 온라인에 올린 자가 일류 명문대 경제학 계통 출신에다 미국(또는 다른 선진국) 유학을 한 대학 교수급 인사이거나 혹은 전직 고위직 관료 출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일개 백수 30대 청년이고, 학력이 고작 공고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나온 것이니 그가 어떻게 그렇게 경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휘두르면서 이 금융대란을 분석하고 진단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특히 권력집단의 뿌리 깊은 병폐인 천박한 학벌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학벌주의는 사회를 좀먹는 문명병이라는 것은 오래 전에 내려진 결론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병을 앓는 중환자 상태이다. 이 사회는 한 사람의 실체를 겉으로 드러난 ‘간판’으로 예단하는 풍조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여실히 이번 미네르바 사건이 보여 주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았던 신정아를 비롯한 무수한 ‘짝통’들이 날뛰지 않았던가.

한국의 권력집단은 어용 언론이 “가짜에 놀아난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쓴 1면 머릿기사가 내세운 미네르바의 낮은 학벌 시비를 맹종하고서, 미네르바는 학벌이 없는 비전공자이므로 설사 그의 전망과 분석이 옳아도 그것은 가짜일 뿐, 그의 글은 세상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라 해서 그를 오라로 묶고 차디찬 감방에 가두었다.

이 나라의 먹물들은 일부 양심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권력에 아부하고 거기 빌붙어서 한 자리 얻어 찰 것에 눈독을 올린다. 명문대 출신에 외국 유학이라는 꼬리표를 가슴에 달고 다니는 ‘권위’있는 학자님들이 모인 유수한 경제연구기관장들이 다 모여서  747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명비어천가(용비어천가)’를 부르며 단군 이래 최대의 곡학아세의 추태 쇼를 벌인 것이다 학벌주의 신봉자들의 작품이 아니던가.
저 미국 땅에서 교포들 모아 놓고 지금 주식 사면 큰 돈 번다고 꼬드긴 자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었나. 그 말 믿고 주식 산 사람은 과연 큰 돈을 벌었을까? 그러다가 요즘엔 청와대 지하 벙커에 전시에나 있을 법 한 워룸(War Room)을 차려 놓고 위기의식을 조장한다.

통화 정책을 잘못해서 막대한 국고 손실을 낸 강만수 장관은 그야말로 만수무강이다. 그는 서울대 법대 출신에 미국 유학파다. 권력집단의 우두머리로 앉아서 국록을 축내고 있다. 학벌이 좋아서란다. 그가 하는 말은 틀려도 옳은 것이다. 학벌이 높으니까. 미네르바가 한 말은 옳아도 틀린 것이다. 학벌이 없으니까.

외눈박이 까마귀들만 사는 마을에 두눈박이 까마귀가 갔다가 가짜박이라 해서 왕따를 당하고 쫓겨 난 이야기 들어보지 않았는가.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는 이미 판결이 났다. 가방 끈이 짧다고 무시하는 먹물 근성에서 해방되는 날 이 사회는 비약적 발전을 할 것이다. 학벌, 문벌, 지연과 같은 것들의 볼모가 되지 말아야 한다.

유명한 과학자들 가운데는 학위 없이도 실험으로 인정받아 인류사회에 공헌한 분들이 많다. IT업계의 거성 스티브 잡스(Steve Jobs)나 빌 게이츠(Bill Gates)는 대학 중퇴자이다. 그들이 대학에서 꼬박꼬박 수강을 했던들 그와 같은 업적을 남겼을까.

미네르바는 황혼녘에 날개를 퍼덕인다(헤겔). 한국의 미네르바 1호는 감방에 유폐되었으나 온라인 세계에는 오늘도 수많은 학벌을 초월한 제2, 제3, 제4…의 미네르바들이 탄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