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3 아들에게
고 3 아들에게
  • 한관호
  • 승인 2009.02.25 19:17
  • 호수 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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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뭄으로 목마른 대지에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휴일인 산불감시원, 고등학교 친구 둘과 또 다른 동기생이 하는 식당에서 소주잔을 나눴다. 일반 촌로들이 그렇듯이 이런저런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때가 때인지 대화는 대학교 입시 이야기로 흘러갔다. 한 친구 아들은 4년제 국립대에 입학 했고 다른 친구 아들은 4년제 대학은 낙방하고 말았단다.

또 다른 친구 아들은 원서 값만 백 만 원에 이르고도 결국 재수를 하기로 했단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도 제수를 시킬 것인지, 전문대라도 보낼 것인지 머리가 아프단다. 대학을 꼭 가야하나며 아들의 선택에 맡겨두라고 했더니 한국에서 사람 구실을 하려면 대학교 졸업장은 무조건 있어야 한단다.

그런가?. 우린 대학 문턱도 못 가봤지만 남한테 손 벌리지 않고 적지만 시나브로 이웃돕기도 해가면서 가족 건사하며 먹고살지 않느냐고 했다. 생뚱맞다는 표정이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오니 고 3으로 올라가는 아들 녀석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나고 은근히 걱정이 됐다.

평소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맡겨두는 편이지만 이제 고 3이다 싶어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넌지시 대학교는 갈 거냐고 물었다. 부산 모 대학에 가고 싶단다. ‘무슨 과’ 하고 물으니 그건 아직 생각 못해봤단다.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안사람이 들으면 언짢아하겠지만 대학이 중요 한 것이 아니다. 네가 잘할 수 있는 일, 그 일을 하면 참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선택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대학을 가려면 학교가 아니라 과를 먼저 선택하라고도 했다. 

교육문제만 생각하면 한마디로 암담하다. 인격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를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하지 않는가. 헌데 오로지 대학 진학만을 목표로 하는 우리나라 교육풍토. 

이 정부 들어 실시한 학습평가, 우리 아이는 한국의 고등학생 가운데 몇 등일까. 몇 등 안에 들어야 잘 살고 몇 등 밖이면 못 살까. 학습평가 결과 발표 후 ‘잘 가르치는 학교에 더 지원 하겠다’는 대통령 말씀. 이를 바꾸어 말하면 공부를 잘해야 정부에서 주는 혜택도 더 클 것이고 공부를 못하면 국물도 없다는 형국이다. 얼마 전 명동성당에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추모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시절이 팍팍하면 대중은 영웅을 그리워한다지만 그 분이 특별한 영웅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도 아니었다.

그런 분에게 불교, 기독교 등 종교를 초월해 부자나 못 사는 이나, 보수나 진보를 뛰어넘어 국민 거개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 현상을 궁금해 하는 필자에게 고등학교 교사인 강 선생은 ‘이 시대가 낳은 상황’이라고 정의했다. 한국 자본주의, 특히 이 정부 들어 사회가 갈수록 천박해지고 있다.

또 아이엠에프 보다 더 어렵다는 경제상황에 서민들은 등골이 휘는 데 내 놓는 정책이라곤 감세에, 규제완화에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책뿐이다. 그런지라 사람들이 내놓고 말은 안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반발이라고 했다. 또 추기경의 삶을 통해 은연중에 가치가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자신에게 반추하는 것이라고 도 했다.

사무실 동료인 장재완 기자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향나무는 죽을 때도 도끼에 향을 묻혀주고 죽는다’는 글귀가 나타난다. 이번 주말엔 아들 녀석과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향나무 이야기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