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물, 계속 공경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친일인물, 계속 공경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 최인철
  • 승인 2009.07.01 22:22
  • 호수 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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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유당공원 내 친일파 공덕비 정비계획을 마련하고 재배열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일단 환영할 일이다. 석조건조물인 비석은 세월이 흐를수록 파손의 우려가 큰 까닭이다. 또한 금석문이 지닌 역사적 가치 즉, 사료로써의 가치에 비추어 더 이상의 비문 훼손을 막는 일은 시급한 문제다.

더나가 명확한 분류방안 없이 혼재돼 있는 비군들을 시대 순으로 재배열하는 문제도 시대적 변화와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유당공원은 우리지역 격변기 역사 현장이었다는 점에서 지역적 가치가 상당하다. 특히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갑오농민전쟁과 여순사건,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뼈아픈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장소다.

이 가운데서도 비군은 우리지역뿐 아니라 우리역사의 영광과 수치가 혼동돼 있음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그러나 현재 시의 안내문안 초안을 살펴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비문을 해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비문의 주인공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역사적 사실관계가 명확한 이들의 비문은 비문내용과는 별도로 그들의 행적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단순히 비문내용 해설에 머물 경우 일부 문제가 있는 인물들이 오히려 추앙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교육차원에서 역사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제시대 판사를 지낸 조예석의 선정비나 을사오적 중 한 인물인 이근택의 형이면서 강점기 중추원 참의를 지낸 뒤 일제 천황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하사 받은 이근호의 애민비는 전형적인 친일파의 비석으로, 하루속히 역사적 평가 속에 적절한 해설과 안내가 필요한 비석들이다.

더나가 이근호의 후손들은 그가 남긴 재산을 돌려받겠다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민족정기 회복차원에서라도 이들의 친일행적에 대한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갑오농민전쟁 당시 우리지역 농민 2천여 명을 학살했다는 의혹과 동학접주 김개남을 독단적으로 척살한 이도재의 선정비와 학정에 못 이겨 민중들이 들고 일어난 광양변란을 진압한 당시 현감 윤영신의 공적과 민란진압과정을 기록한 토평사적비나 수반토평비 등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안내와 설명도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은 민족의 정체성과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일이다. 이번 작업은 비록 시기는 늦을지라도 민족 반역에 대한 죄과는 반드시 묻는, 소극적이지만 엄중한 교훈을 남기는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민족정기 정립차원의 간결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