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은 농민의 자존심”
“친환경은 농민의 자존심”
  • 박주식
  • 승인 2009.09.09 21:46
  • 호수 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농업의 희망을 일구는 ‘태양작목반’

저녁 6시30분. 백운산 서편 섬진강을 마주하고 자리한 다압면 고사리 죽천 마을은 벌 써 어둠이 내린다. 섬진강을 따라 좌우로 늘어선 배 밭엔 봉지에 쌓인 배들이 빛을 발하며 수확을 기다리고, 마을 뒤편으로 시작되는 밤나무는 벌써 밤송이를 터트리고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사진 찍을 거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여 가세, 내일 또 오기 힘들 것인디” 늦은 시간 약속을 잡고 방문한 것도 민망한데 태양작목반 강병수 반장은 벌써 밤산을 향해 앞서가고 있다. 급히 밤 산에 올라 토실토실한 알밤을 입에 물고 있는 밤송이 사진을 몇 장을 찍고 다시 사무실을 찾으니 이번엔 태양작목반원들이 다섯 명이나 나와 반겨 맞는다.

힘든 농사일에 오늘도 고단한 하루였을 텐데, 아버지의 인자함과 따스함이 절로 느껴지는 그들이 정겹기만 하다. “그래도 손님인데 밥은 먹으면서 얘기해야지” 강 반장은 얘기가 간단히 끝날 것이 아님을 알고 모두를 인근 식당으로 이끈다. 섬진강 참게탕을 차림으로 둘러앉은 저녁자리는 농사와 농업정책 전반에 걸친 토론회를 방불케 한다.

태양작목반이 결성된 것은 지난 2001년. 당시엔 지금처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광양원협의 친환경농업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친환경농업을 앞서 시작한 영남지역으로 교육을 받으러 다니며 준비를 시작했다. 땅을 살리고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친환경은 필수라는 생각으로 남보다 앞서 친환경 농업에 나선 것이다. 마침내 2003년 광양ㆍ순천에서 7번째로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태양작목반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규정에 맞게 출발했다. 친환경인증 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지역은 아예 처음부터 제외하고 친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곳만을 선택해 인증을 받았다. 배와 밤, 매실, 감 재배지 30만2천㎡에 대해 저농약인증에서 출발한 태양작목반은 지난해부터 무농약인증을 받으며 꾸준히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농법은 그들에게 고된 노동으로 다가왔다. 제초제를 치지 못하니 잡초를 직접 제거해야 했고, 친환경 약재를 만들고 영양제를 배양해 작물에 살포하는 것이 일반관행농업보다 몇 곱절이나 많은 일손과 노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었다.

“친환경 한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약은 일반농업보다 더 많아 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는 강 반장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르지 않으니 모두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고 하소연 한다. 대부분의 친환경 농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처럼 태양작목반도 판매에 애로를 겪고 있다. 현재 태양작목반은 땅심을 돋우기 위한 퇴비 수급이나 친환경 약재 제조 구입은 공동으로 하나 작물 재배와 판매는 개별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생산된 농작물을 개인 직거래나 학교급식, 전자상거래를 통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판매되는 양은 전체 생산량의 절반 정도. 나머지 반은 공판장으로 내 보낸다. 일반농업에 비해 몇 배의 노력과 정성을 들여 생산한 상품을 일반 농산물과 함께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유통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지역 농산물, 지역에서 소비하려는 노력 우선돼야

강 반장은 “친환경을 정책적으로 장려했으면 판매 방안도 함께 마련됐어야 한다”며 “시작만 지원하고 판매는 알아서 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정책이다”고 강조했다. 태양작목반원들은 친환경 농가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따라야 한다고 한 목소리다.

먼저 필요한 것이 공동선별기다. 공동출하를 위해선 공동선별이 우선돼야 하지만 아직 작목반은 대형 공동선별기를 마련치 못하고 있어 농가별로 보유하고 있는 소형선별기로 선별해 개별 판매에 나서고 있다. 공동선별ㆍ판매ㆍ정산까지 이뤄져야 농민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면세유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 농사 면적에 맞게 지원돼야할 면세유가 농기계 보유 현황에 따라 배정되니 일반 관행농업 보다 제초작업과 친환경 약재살포 작업이 많은 친환경농가는 항상 모자란다. 시에서 농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업과 교육 지원을 늘리면서 농업지원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불만이다.

작목반원들은 우리지역 농산물을 우리지역에서 소비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시와 광양제철소가 공동으로 나서 제철직원가족들이 먹고 선물하는 것을 우리지역 농산물을 이용하면 지역 농가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배즙 가공시설 설치에도 시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때는 소규모 가공업체로 배즙을 생산해 학교 급식에 많은 양을 납품했으나 까다로운 허가 절차로 취소됐다. 다시 설치허가를 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가 않다. 시가 나서 면 단위에 한곳 정도만이라도 배즙 가공시설을 설치해 준다면 농가 소극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처럼 많은 제약 속에서도 태양작목반은 매실과 밤, 배, 감 등 다양한 작물로 수익을 보전하며 꿋꿋하게 친환경을 고집하고 있다. 스스로 친환경을 실천하며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땅을 살린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해 학교급식에 제공함으로써 아이들의 건강을 담보하고 있으며, 농산물 완전 개방에도 친환경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섬진강을 나룻배로 건너 하동에서 쌀과 보리를 빌려 와 생계를 유지했던 다압.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옛 이야기. 농사를 천직으로 알며 의지와 노력으로 산과 들을 과수원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부농을 실현했고, 이젠 친환경을 선도하고 있는 이들이 자랑스럽다. 따뜻한 배려를 담은 배웅 속에 섬진강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과수원 사이를 지나는 마음이 더 없이 감사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