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와 만나는 특별한 여행
십우도와 만나는 특별한 여행
  • 최인철
  • 승인 2010.01.28 10:11
  • 호수 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은사 극락보전에 이르다
천은사 극락보전 주불 아미타불
극락보전에 이르면 석가여래불상의 온화한 미소에 천은사는 깊게 잠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잔물결 이는 호수 가득히 지는 햇볕을 퉁겨내는 겨울의 날이 일찍 저문다. 천은사의 겨울은 호수가 먼저 보고 호수가 일찍 마감하는 시간이다.

절집 곁을 싸고도는 계곡의 물줄기는 쉼 없이 호수로 흘러들고 호수는 천천히 들판을 흘러들다 섬진강과 몸을 섞는다. 그렇게 섬진강도 끈임 없이 흘러 마침내 바다와 한 몸이 된다. 반본의 환원은 그토록 오랜 세월 저리 돌고 이리 돌며 다시 내 곁에 이르는 법이다.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을 모신 천은사 제1의 건물이다. 극락보전에는 수많은 단청과 불화를 아우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선불교의 핵심을 이루는 십우도다. 십우도는 소를 잃어버린 목동이 소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그린 그림이다.

옛날 중국 복주땅에 대안(大安)선사란 이가 백장산의 백장(百丈)화상을 찾아가 뵈옵고 묻되 “학인(學人)이 부처를 알고 싶은데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물으니 백장선사가 대답하길 “마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거와 같느니라”고 말했다. 십우도는 여기서 시작된다.

십우도의 첫 장면은 잃은 소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태만한 목동은 소가 도망 간 줄 모른다. 목동은 놀이에 열중해서 소를 챙길 마음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문득 놀이에서 깨어났을 때 목동은 자신의 소가 없어짐을 목격한다.

목동은 자신이 소를 잃은 것을 알고 잃은 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바로 구도(求道)의 시작이다. 자신이 소를 잃었다고 자각(自覺)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구도심의 발현, 이제 잃어버린 소를 찾아 떠난다. 그것이 심우(尋牛)다. 인간이 소, 즉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원심(願心)을 일으키는 단계이다. 소를 찾는 동자가 망과 고삐를 들고 산속을 헤매는 모습이다. 심우의 단계는 선불교는 물론 일상사에 미쳐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인생사에도 휘두르는 주장자이기도 하다.

십우도 9번째 그림 '반본환원'

우리는 무엇을 잃었으나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 채 물과 욕을 따라 급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만 뒤돌아 볼 일이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목동은 소가 살아 있음을 알고 소를 찾을 수 있다는 기쁨에 젖는다. 이것이 십우도의 두 번째 장면, 견적(見跡)이다. 깊은 마음속으로 들어가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단계이다.

그 발자국을 보느냐 못 보느냐는 오로지 목동의 마음에 달려있다. 순수한 열의를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면 본성의 자취를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동은 소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소를 찾는다. 그런 그는 얼마 후 마침내 자기의 잃은 소를 보게 된다. 마침내 견우(見牛)다. 즉 자신의 성품을 보아 견성함이 눈앞에 다다랐음이다.

그러나 야생의 습성이 배인 소는 난폭해져 있다. 목동을 따라 오려 하지 않는다. 목동은 찾은 소를 데려가기 위해 우선 소를 길들이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러자 소는 마침내 주인의 뜻을 따르게 된다. 이것이 득우(得牛)다. 이때의 소는 실제로 검은색을 띤 사나운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삼독(三毒)에 물든 거친 본성을 의미한다.

다음 단계는 목우다. 소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하여 소의 코에 코뚜레를 한다. 삼독의 때를 벗겨내는 과정으로 가장 중요시되는 단계이다. 소가 유순하게 길들여지기 전에 달아나버리면 다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소가 차차 흰색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가 길들여 졌음을 안 목동은 소의 등에 올라 앉아 집으로 돌아온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잘 길들여진 소를 타고 마음의 본향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단계다. 번뇌와 망상, 욕망이 끊겨서 소는 무심하고, 그 위에 있는 목동도 무심하다. 이때의 소는 완전히 흰색이다. 목동이 구멍 없는 피리를 부는 것은 육안으로 살필 수 없는 본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한다.

또한 망우존인(忘牛存人)이다. 집에 와보니 소는 간데없고 자신만 남은 단계다. 결국 소는 자신의 심원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므로 이제 집으로 돌아왔으니 방편은 잊어야 함을 보여준다. 곧 자신이 깨쳤다는 자만을 버리는 경지다. 자만의 병은 수행자가 뛰어넘어야 할 가장 무서운 덫이다. 이를 넘지 못하면 부처에도 걸리고 법에도 걸린다. 이것을 불박법박(佛縛法縛)이라 한다.

소가 사라진 뒤에는 자기 자신도 잊어야 한다. 깨침도, 깨쳤다는 법도, 깨쳤다는 사람도 없는 이것이 공(空)이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 인우구망(人牛俱忘)이다.
인우구망에서 전진하면 텅 빈 원상 속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비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조그마한 번뇌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참된 지혜를 상징한다. 십우도의 본질적인 깨달음의 단계인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러나 선불교는 예서 머물지 않는다. 자신만의 깨달음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입전수수(入廛垂手)다.
석가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완성한 뒤 한동안 법을 전하는 일을 망설이다가 벌떡 일어나 인간세상으로 법을 들고 가는 길이다. 바로 중생을 제도하는 경지다. 이것이 부처에 이르는 가장 마지막 단계다. 불교의 궁극적인 뜻이 중생 제도에 있음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렇듯 십우도는 인간에게 누구나 불성(佛性)이 있으나 그것을 찾고자 정진하는 이만이 본성을 보고 본성을 전하는 법이라는 것을 묘사한 그림이다. 천은사 극락보전을 돌며 십우도가 가진 그림의 웅혼한 뜻을 살피는 일은 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느냐 하는 물음인 셈이다.

천은사 극락보전이 모신 중심불이 아미타불이니 십우도의 뜻과 참 잘 어울린다. 아미타불은 서방 정토에 있는 부처이면서 대승 불교 정토교의 중심을 이루는 부처로, 수행 중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었던 부처이기 때문이다.

천은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