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살기 좋은고장, 새로운 개 발이 희망
가장살기 좋은고장, 새로운 개 발이 희망
  • 박주식
  • 승인 2010.05.31 09:30
  • 호수 3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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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제일향 ‘성황마을’


‘앞문 열면 생선이, 옆문 열면 소금이
 뒷문 열면 나무가 들어오는 마을’


‘조선지 전라도요, 전라지 광양이며, 광양지 골약이요, 골약지 성황(朝鮮之 全羅道요, 全羅之 光陽이며, 光陽之 骨若이요, 骨若之 城隍)이라’

‘호남은 기후가 고르고 오곡이 풍성하여 음식문화가 으뜸인 고장이며, 광양현은 농산ㆍ임산ㆍ수산ㆍ광산ㆍ양잠이 으뜸인 고을이라. 특히 서낭댕이는 주위에서 농산물이 풍부하게 나고 또한 앞에서는 김을 비롯하여 해산물이 풍부하게 나며 뒤에서는 임산물이 많이 나니 이곳이 제일 살기 좋은 고장이라.’

'조선제일향'이 새겨진 비석.
때는 조선영조시대, 임금으로부터 어려운 백성을 구하는데 필요한 점들을 소상히 점검하고 탐관오리들의 작태를 조사하여 현장에서 시정토록 하라는 어명을 받고 암행에 나선 어사 박문수가 광양현 골약방(현 성황동)을 접어든 시기는 영조 3년, 1727년 3월 중순.

봄철이라 온몸이 나른하고 출출하기도 했던 박 어사는 서낭댕이 주막집에 들려 국밥에 곁들여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려고 주막집 마루 한쪽에 걸터앉았다.

마침 곁에 입심 좋은 이 고을 촌로들 서너 명이 있어 이곳 민생도 살필 겸 이들과 수인사를 나눈 후 막걸리를 주고받는다. 이때 박 어사의 입담을 통하여 슬슬 나오게 된 말이 그 유명한 ‘광양예찬’ 일화다.

마을주민들은 그로부터 열흘쯤 후 박문수가 순천부에 암행감찰 함이 알려지자 ‘광양예찬’의 장본인이 비로소 어사 박문수인줄 알았으며 이후로 광양지방에 널리 회자되어 구전되어 오고 있다.

어사 박문수가 조선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으로 손꼽은 마을.
전국 어느 곳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를 찾지 못할 정도의 극찬을 마음에 간직하고 사는 성황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마을이라는 인증서를 가슴속에 간직했기 때문이다. 

성황마을은 농산물과 해산물, 임산물 등 물산의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할 뿐 아니라 주민들의 품성이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인심도 매우 넉넉한 살기 좋은 고장이다.
남쪽으론 바다와 연결돼 해산물이 풍부했고, 마을 아래에선 커다란 솥을 걸고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생산했으며, 마을뒤편 고삽재는 산림이 울창해 화목을 구함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앞문을 열면 생선이 들어오고, 옆문을 열면 소금이 들어오고, 뒷문 열면 나무가 들어오는 마을’이라는 말이다.
마을 안내에 나선 주현철 통장은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여건이 잘 갖춰진 마을이다 보니 예로부터 인심이 좋고, 모난 사람이 없으며, 협조심이 강한마을이다”며 “크게 부유하진 못해도 주민들이 하나같이 부족함이 없이 살아왔다”고 자랑한다.

그는 “성황이란 마을이름이 임금이 앉을 자리라는 또다른 의미로도 유래되고 있다”며 “어사 박문수가 조선팔도를 다 돌아보고 성황을 최고다고 예찬했으니 이는 두고두고 역사에 남을 자랑이다”고 강조했다.

성황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 골약리 지역이었으나 1700년대 초기 이후부터 골약면 지역에 속하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성황리ㆍ수동리ㆍ정산리ㆍ용장리와 병합해 골약면 성황리에 속하게 됐다.
성황마을은 약430년 전에 진양정씨가 처음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진양정씨가 많이 살고 있다. 

마을이름 유래는 옛날 이 지역에 성황묘(신주를 모신 사당)가 있었다 하여 성황이라 한데서 유래된 지명으로 ‘서낭당ㆍ서낭쟁이ㆍ서낭댕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흔적이 없지만 서낭당의 위치는 현 골약동 파출소 부근이며 옛날에는 이 지역에 큰 시내가 흘렀고 냇가주변에 많은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고 전한다.

한때는 조선에서 가장 사람 살기가 좋은 곳이라 칭송받았던 성황이지만 개발과 도시화에 함께하지 못하며 지금은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으로 머무르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주현철 통장은 “골약면 소재지였을 때 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활성화 됐었는데 지금은 마을이 다른지역에 비해 많이 낙후됐다”며 “그래서 주민들이 지난 2008년부터 시에 건의서와 진정서를 내고 개발을 서둘러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동광양시가 형성되고 중마동이 개발돼 큰 도시가 됐지만 바로 이웃한 성황은 이러한 변화에 함께하지 못함으로서 소외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주 통장은 “지금이라도 개발하는 것이 마을의 희망이다”며 “어사 박문수의 성황예찬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을 미리 예견한 선견지명도 담겨져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조선제일향’ 성황마을이 주민들의 염원대로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거듭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의 명성을 언제까지나 이어가길 기대한다.

마을 정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