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이예진 광영고 2)
나의 길 (이예진 광영고 2)
  • 광양뉴스
  • 승인 2010.10.18 09:35
  • 호수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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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백일장 - 금상

난 이때까지 살면서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인줄로만 알았다. TV에서 ‘공부의 신’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처음에는 공부를 못했었는데 열심히 해서 서울대에 들어가게 되었다며 행복하게 웃음을 가득 지어보였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해서 내가 미래에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친구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사귈 마음이 전혀 없었다. 친구가 있으면 공부에 방해만 될 줄 알았다. 난 그렇게 날 혼자로 만들었다.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금이라도 친구를 사귀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고 난 외로우면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빠께서는 날 가만히 부르셨다. 아빠는 어느 정도 술에 취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져 있었다. 아빠는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르다 말고 말했다.
“어차피 할 수 없는 건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겨운 소리 언제나 아빠께서는 무엇을 하던 간에 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왜 할 수 없는데? 아무리 못해도 열심히 하려고 하면 무엇을 못하겠어? 벌써 포기하라고?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나 봐준 적 없었잖아? 아빠가 나 어렸을 때 공부 시켜본 적 있어? 내가 성적 안 좋아도 때린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한 번도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잖아 공부 시켜본 적 없잖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직 고 1밖에 안된 나에게 벌써부터 포기하라고 한 아빠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 아, 아니 왜 그래? 그리고 솔직히 내가 봤을 때는 넌 공부머리가 아니야”
기가 막혔다. 공부머리가 아니라고? 그래서 뭐 어쨌단 거지?
“열심히 하면, 그러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왜 항상 못 한다 그래?? 나, 난 이 학교 싫단말야. 외롭단 말야.”
난 마지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다. 이때까지 끔찍했던 학교를 다니며, 외로울 때마다 공부를 해나가면서 나중에는 미래에 반드시 행복해 질수 있을 거니까. 조금만 참자고 줄곤 생각해왔는데… 그렇게 말하면, 포기하라고 말하면 도대체 난 뭐가되? 그럼 무슨 생각으로 이 학교생활을 버텨 나가라는 거야?

아빠께서는 우는 내 모습에 당황해선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아빠께서는 내 손을 지그시 잡고 빨개진 눈을 손으로 비벼댔다.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모습에 순간 당황해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빠께서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요즘은 공부를 잘해도 성공 못하는 사람도 있어 서울대 들어간 아빠 친구 있거든? 그런데 일자리가 좀 그렇잖아… 공부를 잘해서 성공 하는 건 이제 한 물 갔어.”
난 순간 멍 해졌다. 그럼 내가 열심히 하려고 발버둥 쳐도 다 소용없는 짓이란 말인가? 공부를 잘해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건가? 순간 내가 이때까지 생각해왔던 공부를 잘할수록 행복해진다는 생각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 그럼 내가 만약 공부를 열심히 해도 공부를 안 한 아이랑 미래에 생활하는 게 거의 비슷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뭐지? 그럼 공부를 열심히 해도 행복이랑 상관관계가 없는 건가? 그럼 학교에선 왜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는 거지? 그럼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끔찍한 학교생활을 견뎌내야 하는 거지?

아빠의 말을 듣고 의욕이 싹 사라져 버렸다. 아니. 꼭 내가 죽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희망도 미래도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내가 나를 알 수가 없었다. 쓰레기 같았다.  미래도 없는 내가 정말 한심해 보였다. 아무 대책이 없었다. 난 그저 무의미한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아빠 말은 내 마음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난 그저 쓰레기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이. 이 세상엔 하찮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그게 거짓말로 들려왔다.

그저 불쌍해 보이니까 예의상 해주는 말로밖엔 들리지 않았다.
학교라는 것도 쓸모없는 것 같았고 나란 존재도 쓸모없는 것 같았다. 무의미한 시간, 얼른 죽어야지 왜 사는 걸까? 란 생각이 들 무렵 명혜정 선생님을 만났다. 글을 쓰고 싶으면 자신에게 오라고 했다.

달리 할 짓이 없었던 나는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어졌다. 우연히 엽서시 문학공모에서 독후감을 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러 가게 됐다. 하지만 워낙 무뚝뚝하신 선생님이라 내 글을 보고 “이게 글이라고 쓴 거야?” 하면서 한심하게 볼까봐 정말 두근대고 긴장됐다.

명혜정 선생님은 내 생각과 다르게 내 글을 보고 차분히 충고하시며 날 도와주셨다. 무사히 독후감 응모도 하고 명혜정 선생님은 내게 소설도 한 번 써보라고 권유 하셨다. 한번 소설을 써보라고? 내가?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는 나한테?

의외의 말에 좀 당황했지만 소설을 몇 장씩 쓰며 선생님께 보여주곤 했다. 선생님은 내 소설을 보며 잘 썼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수업시간에 반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소설 이야기를 꺼냈다. “예진이가 소설 쓰는데 한 번 잘 봐라.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어. 분명 뽑힐 거야. 너희들이 봐봐라 뽑히는지 ”

선생님은 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 자신 할 수 있지?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다고, 뽑힐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도… 할 수 있는 건가?
가슴이 벅차올랐다. 명혜정 선생님은 달랐다. 나보고 저렇게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언제나 이것도 못하냐고 소리 듣던 나였는데 정말 내가 할 줄 아는 게 없는 줄만 알았는데 난 이때까지 내가 쓸모없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할 수 있다고 한다. 기뻤다. 너무 가슴 찡한 말이었다. 저 말을 한 번쯤 들어보고 싶었다. 할 수 있다는 말을 너무나도 듣고 싶었는데….

아빠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을 듣자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소설로 상을 받든 말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란 사람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며 밀어주는 저 선생님만 계신다면 만약 상을 받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얼마 뒤 비룡소에서 독후감 보낸 게 뽑혔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난 글을 쓰며 살기로 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방황했을 때 글은 내게 다가왔고, 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선생님 덕분에 난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이제 ‘이 세상에 쓸모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 말이 와 닿았다.

나는 너무 내가 쓸모없다고만 여긴 것 같았다. 고마웠다. 명혜정 선생님께서 만약 날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이때가지 내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나를 밀어주는 선생님을 보아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글을 쓰면서 그렇게 걸어가겠다. 혹 막히거나 힘들어도, 내가 다시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지금 앞으로 다시 걸어 나갈 것이다. 그게 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