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수호신 ‘장승’만드는 이장님
마을의 수호신 ‘장승’만드는 이장님
  • 홍도경
  • 승인 2011.02.28 09:17
  • 호수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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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사람들-최경식 섬거마을 이장

마을 어귀에서 소박한 모습으로 손님을 가장 먼저 반겨 맞는 장승은 옛날부터 마을을 상징하고 지켜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해 왔다. 흔하던 장승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는 요즘 12년 전부터 마을 어귀에 장승을 직접 제작해 세우고 있는 이가 있다. 진상면 섬거마을 최경식(55·사진) 이장이 바로 그 주인공.

그가 장승을 만드는 사연을 듣기위해 섬거마을을 찾으니 최 이장은 “잘 만든 것도 아닌디, 뭐할라고 왔소”라며 껄껄대고 웃으며 반겼다. 그는 은행나무와 소나무 등을 망치로 끌을 치고 조각칼로 다듬어, 부리부리한 눈과 주먹만 한 코, 그리고 이빨을 드러낸 입 등 익살스러운 장승을 빚어 세운다.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어서 세련미보다 투박함이 더 하지만 최 이장의 정성만큼은 대단해 작품 하나하나를 옛날 섬거마을 어귀에 서있던 장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섬거마을은 1789년 광양현 진상면 역촌으로 섬거역으로 불러왔다. 중앙에서 지방에 이르는 주요 도로에 대략 30리마다 말을 제공하는 역이 있었는데 섬거역은 현 섬거회관 자리인 섬거리 619번지에 위치했다. 당시 섬거역에는 말을 관리하는 역리가 94명에 이르러 진상면의 교통, 문화, 행정의 중심지역으로 자리 잡았었다.

최 이장은 “진상면장 할래? 섬거이장 할래? 흐믄 섬거이장 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라”라며 마을 자랑을 이어나갔다.
섬거역은 과거 서울이나 경상도로 가는 원님들이 많이 오갔는데, 장승이 많이 서있어 장승배기라고 불렸는데 아직도 섬거마을 입구를 사람들은 장승배기라고 부르고 있다. 최 이장은 부산에서 고가구 제조업을 해오다 20년 전에 귀농했다.

그 후 13년을 청년회장으로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2년 전부터는 마을의 대소사를 비롯해 주민들의 궂은일까지 도맡아 하는 마을이장 일을 시작했다. 그는 12년 전 당시 이장으로부터 ‘장승배기’라는 마을입구의 유래와 장승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승 제작을 결심했다.
고가구 제조업을 해온 최 이장은 장승제작을 시작하면서 최근에 유행하는 재능봉사를 12년 전부터 실천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섬거마을은 매년 정초에 장승을 깎기 시작해 정월대보름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을 장승배기에 세우고 오래된 장승은 달집과 함께 태워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왔다. 최 이장은 “처음에는 주민들도 별 관심 없드만 매년 한께 다들 좋아라 하더라고, 마을도 더 살기 좋아진 것 같고 말이여”라며 장승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실제로 장승을 세운 후 섬거마을 맨 꼭대기에 있는 그의 집까지 도로가 2차선으로 확장되고 감, 매실, 시설원예 등으로 마을 수입도 늘어났다. 또 사법고시 합격자까지 배출한 것을 보면 장승의 효과가 없지만은 않은듯하다. 하지만 최근 벌목이 금지된 탓에 큰 나무 구하기가 어려워, 올해 정월대보름에는 장승을 세우지 못했다. 그는 “엊그제 수자원 공사에서 죽은 은행나무를 줘서 하나는 됐슨께 하나만 더 구하믄 된디. 나머지 하나를 구하는 대로 늦었지만 바로 세워야지”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마을에 꽃이 피면 장승 구경하러 어린이집에서 자주 올 때가 가장 흐뭇하다”는 최 이장은 몇 년 전 누군가 장승을 통째로 뽑아 훔쳐 가버렸을 때는 화가나 잠도 못 이뤘다고 한다.
그는 섬거마을 에서만 장승을 만든 것은 아니다. 지금은 바빠 못하지만 장승을 깎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낙안민속촌에도 2년 동안이나 장승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최 이장은 “장승을 만들면 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아서 좋다”며 “마을을 위해서 이장 일을 그만두더라고 계속 장승을 만들어 마을의 안녕을 빌겠다”고 말했다.
                                      
홍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