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없는 매천 공원 ‘부끄러운 자화상’
화장실 없는 매천 공원 ‘부끄러운 자화상’
  • 지정운
  • 승인 2011.06.07 09:55
  • 호수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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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 “수준 이하” 조롱… 올해 예산 없어
매천 선생의 묘역이 있는 매천공원. 이곳은 지난해 9월 개장식을 가졌지만 화장실이 없어 탐방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지난달 하순 쯤 광양지역 역사 유적을 탐방하던 어린 여학생이 소변을 참지 못하고 그만 옷에 실례를 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녀는 창피함에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학생은 지역 문화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단체로 참가 중이었는 데 이들이 가는 행선지에 매천 생가와 매천 유적공원이 포함돼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던 학생은 볼일이 급했으나 매천 생가에도, 인근 유적 공원에도 화장실이 없어 다음 행선지인 유당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이동하는 버스에서 고통을 참아야 했다. 유당공원에 도착한 소녀는 재빨리 인근의 공공시설 화장실을 찾았지만 순서를 기다리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날 학생들을 인솔했던 A씨는 “10대 초반의 이 소녀에게 화장실없는 역사 유적 탐방은 고통스런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평생 남을 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광양시는 지난해 9월 10일 매천 순국 100주년 추모행사를 매천 공원에서 성대하게 치뤘다. 매천을 배출한 지역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인다는 명분에서다. 이날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으며, 시는 정부 고위 관리를 현장에 초청하려 노력하는 등 매천과 그 상징성을 외부에 알리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으며, 지역의 문화 유적을 답사하는 이들에게 매천 선생 생가와 매천 공원을 둘러보는 것은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추모식이 있은 지 9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이곳에는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시설인 화장실이 없다. 이곳 뿐 아니라 인근의 매천 생가에도 화장실이 없어 탐방객들은 생가 주변의 민가를 찾아 고민을 해결한다. 민가를 찾는 관광객도, 이들을 마다할 수 없는 주민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이곳을 찾는 외지 관광객들이 “수준 이하”라고 빈정대는 이유다. 문제가 있자 이곳을 자주 찾는 지역 문화계 인사들은 시에 화장실 건립이 시급함을 여러 경로로 알렸지만 어찌된 일 인지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는 추모식을 거행하기 1년 전 보도자료 등을 통해 ‘매천 황현 선생 유적지 현창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고 알렸다. 당시 계획에는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1135번지 외 9필지에 공원을 조성하고 연지, 산책로를 개설하고 주차장과 정자, 화장실 건립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없고, 시는 아직 화장실 건립을 위한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아직은 확정된 계획이 없다”며 예산 타령을 했다. 이 관계자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며 화장실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올해는 재원이 부족해 내년 본예산에 화장실 설치 예산 확보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고 말했다.

박노신 의회 의장은 “어린아이들이 화장실이 없어 실례를 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라고 개탄했다.

이에 대해 장태기 부시장은 “올해 추경을 통해 화장실 문제는 기필코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