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6.25 10:04
  • 호수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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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있는 바위처럼 유명 인물이 난다
봉강면 서석 동석 명암 각비 지곡, 광양읍 마산 마을
“고런 것도 감이랑가아?//요런 것이 요래 봬도/요로코롬 감이랑게에.”

명암 출신 백우선(59) 시인의 동시 「고욤」의 일부인데, 고려 시대 문과에 급제한 문장가 김황원도 이 마을에서 났다. 한말의 3대 시인 황현과 6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승옥은 서석 출신이다. 마을 뒤 문성산이 한 일(一)자 또는 책상 모습이어서 문재를 품고 있는 지형이란다.

이름 있는 바위를 가진 마을들

동석에서 각비로 넘어가는 길에는 돌이 많고 고인돌도 있어서 ‘돌고개’(石峴)라 한다. 이 돌고개의 동쪽이 동석(東石 : 동돌고개), 서쪽은 서석(西石 : 서돌고개)이다.

서석에는 구석기시대 흔적이 발견되었고 청동기시대 유물인 고인돌은 이곳 마을마다 대량으로 분포되어 있다.

초기 광양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명암(鳴岩)은 마을 북서쪽 논 가운데 있는 고인돌 14기를 일컫는 ‘울바구’를 한자로 쓴 것이다. 남쪽에 있는 사직단은 토신과 곡신에게 제사하던 곳으로 향토사적지 검토가 필요하다.

각비는 동석에서 ‘옥현 수목원’과 ‘꽃밭등’을 지나 지곡으로 가는 길에 10여 채의 주택이 있는 마을인데, 고인돌이 44기나 있다.

지곡은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곳이라서 지실(紙室)이라고도 했고 왕바구가 명물이다.마산은 명암에서 서천을 따라 남쪽으로 이어진 마을이며, 서산 북쪽에 말처럼 생긴 산 아래 있어서 마산(馬山)이다.

이야기를 고이 간직한 사람들
동석 유영대(80) 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이장을 했고 마을을 떠난 적이 없으며,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전후하여 무참하게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

광양원예조합의 산 증인이며 광양농협조합장을 8년 역임했다.

동석 김금자(49) 씨는 마을에 들어온 지 9년째다. 학교 교사인데 장구를 즐겨 치고, 1천여 평의 정원과 텃밭을 가꾸며 땀 흘리는 행복을 누린다.

명암 백남진(80) 씨는 곰뱅이산(熊坊山) 돌 틈에 있던 우물을 그리워한다. 그 우물물은 피부병도 낫게 했다고 전해지며, 그의 어머니께서 밤마다 그곳에서 치성을 드린 결과 11년 만에 자신을 낳았기 때문이다.

명암 최광표(62) 씨는 울바구 전설에 희망을 걸고 말한다. “바위들이 성을 쌓으려 가는 길인데 여자들이 바위가 걷는다고 웃어서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는데,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바위를 울릴 인물이 나올 것이다.”

각비의 최남수(78) 씨는 동교 6학년 2학기 때 여순사건이 일어나서 결석을 많이 하여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군대 제대하고 광주에서 기찻길을 따라 이틀 동안 걸어오기도 했다.

지곡 김경봉(71) 씨는 마을 전설을 기억하고, 스물한 살 때 각비 마을 밭에서 빗살무늬토기를 발굴하여 광양실고에 가져다주기도 했다. 마을 앞을 지나는 송전탑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곡 김정석(50) 씨 정원에는 수령이 250년 된 멋진 소나무가 있다. 남원시 인월면에서 옮겨온 것이며, 관광 자원이 되는 식물원을 가꾸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