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최평규 박사의 대북식량차관 전달 리포트 (1)
[특별기고] 최평규 박사의 대북식량차관 전달 리포트 (1)
  • 광양신문
  • 승인 2006.10.09 15:19
  • 호수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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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40kg 단위로 16만2500포대 총 6500톤을 북한에 전달
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겸 행정학 박사인 최평규씨가 남측정부 대표 신분으로 2005년 대북식량차관 인도-인수 이행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 3일 당초 출항예정이었으나 태풍 ‘나비’의 영향과 선적 자체의 문제 해결로 지난 12일 23시 마산항을 출항, 14일 새벽 북방한계선을 통과해 다음 날 오전 8시께 흥남에 도착했다. 이후 쌀을 하역하고 흥남에 머물면서 겪었던 잊지못할 일들, 그리고 부산항에 17일 귀국하기까지의 최평규 박사가 우리 동포들로부터 느꼈던 생생한 경험담을 3회에 걸쳐 연재토록 하겠다. <편집자주>

쌀 40kg 단위로 16만2500포대 총 6500톤을 북한에 전달하고 돌아온 감회는 실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기쁨이다.

헐벗고 굶주린 우리 동포들에게 쌀을 전달,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을 정도며, 그런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을 방문한다는 자체도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무안한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9월 2일 통일부에서 2005년 대북식량차관 인도인원 활동지침에 대한 교육을 필한 후 방북증명서와 출장비를 수령 받았다. 남측 정부의 위임장을 소지한 남측대표단 일원으로써 필자의 임무와 신분은 다음과 같았다.

임무는 ① 남측을 대표 ② 우리 국적 선원 보호 및 방북교육 ③ 차관 제공 물량에 대한 정확한 인도-인수 이행 ④ 귀환시 선원 전원 탑승 여부 및 무단승선자 등 확인 등이며, 또한 남측 당국의 위임을 받은 각 기관 소속 직원으로서 정부대표의 신분을 갖고 있었다.

당초 출항예정은 9월 5일이었으나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연기, 12일 23시 마산항을 출항하는 것으로 5박6일간의 행사 일정은 시작됐다.

우리 남측 대표단이 승선한 선박의 이름은 비제이 에이스(BJ ACE), 국적은 한국, 1990년 3월 일본에서 건조된 6천톤급 일반화물선이다. 선박의 길이는 106.50m, 폭은 18.20m로서 기중기 25톤짜리 4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승무원은 선장과 기관장, 항해사, 갑판원 등 15명(외국인 4명, 조선족 요리사 1명 포함)과 남측 대표단 4명을 포함하여 모두 19명이 승선했다.

NLL(북방한계선)을 13일 01시20분에 통과하는 동안 중국으로 상륙한 태풍 15호가 사라지지 않고 고기압으로 인해 정동방으로 서해를 가로질러 군산쪽에 상륙하면서 저기압으로 변했다. 그 영향으로 동-서해가 풍력 6의 강풍으로 16시30분부터 비가 내렸으며 3m이상의 파도를 동반하여 14일 새벽까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

14일 위도 39도의 흥남은 아침이 깨어나는 시각부터 바다는 많이 좋아져서 우리 일행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10시05분, P.S지역(대기 묘박지, Pilot Station)에 도착했다. 본선보다 2시간 앞서 타 대북지원물자를 실은 선 이스트(SUN EAST)호가 전북 군산항을 출발하여 3박4일만인 9월14일 08시에 흥남항에 도착했다는 무선 연락을 받았다.

도선사(導船士)가 오기까지 약 2시간을 기다렸고, 12시20분에야 도착했다. 도선선은 검정색으로 길이 12m 정도의 낡은 철재선으로 약 5톤 정도 되어보였다.

도선사 2명, 국가검사소(출입국관리) 소속 경비원 4명, 세관원과 항무관, 식품검역관과 방역관 등 10여명이 12시 20분에 승선하여, 도선사가 도선을 지휘하는 동안선장과 함께 시작된 입국 수속은 선내, 선창, 기관실, 부식창고, 각 선원침실, 각 창고 등을 검사했다.

날씨는 오후부터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흥남 도시 위로 펼쳐 보이며 그렇게 말만 듣던 흥남부두에는 오후 2시20분에 접안했다. (▲다음호에 계속…)
 
입력 : 2005년 0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