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7.09 09:36
  • 호수 4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월면 외망 내망 장재 구룡 이정 선소 신답 아동 신덕 마을

끝이면서 시작점이 되는 경계지대

호남정맥의 끝점인 망덕산. 섬진강이 바다를 만나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마주보는 망덕(望德)은 멀리 무주 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다거나 가까운 남해 망운산과 호응하였거나, 대륙과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고 드나들던 요지다. 정상 북동쪽 깔딱바구의 위용을 뒷받침하는 덕석바우는 천마가 내려앉았다가 억불봉으로 날아가면서 남긴 발자국을 전설과 함께 선명하게 남겼다. 명당이 있어서인지 구룡에서 조재천이 났고 “내 고향 망덕포구”라는 시로 애환을 달랜다.

경계지대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

외망은 망덕산의 동남쪽 바깥에 있어서 ‘바깥망덱이’고, 강과 바다를 지켜보던 ‘망뎅이’ 곧 망촌(望村)으로서 광양의 대표적인 항구였다. 내망은 망덕산 북쪽의 ‘안망덱이’인데, 임진왜란 직전에 밀양부사를 역임하고 순절한 채구연 의사의 묘가 있다.

장재는 배암재에서부터 천황산을 거쳐 내려오는 산줄기, 재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서남쪽 옥녀봉으로 뻗어가는 산등성이는 곧바르면서 생동감이 넘친다. 구룡은 천황산 청룡등의 용과 산 아래 거북이가 마을의 구슬바위를 가지고 놀이한다는 구룡롱주(龜龍弄珠)에 연유한다.

이정은 삵괭이 모양의 섬이라서 ‘삵섬(狸島)’이던 곳을 뭍으로 연결했고, 샘물의 맛이 좋다고 알려져 이정(狸井)으로 바뀌었다. 선소는 임진왜란 때 배를 만들었고, 조선 후기에 군선을 배치한 곳이다. 지석묘가 있고 옛날 면사무소 건물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신답은 ‘논골(沓洞)’ 앞 강변에 둑을 막고 간척지를 만들어 넓은 논을 가지게 되면서 부르게 되었고 섬진강휴게소에 남해고속도로 준공 기념탑이 있다. 아동(鵝洞)은 지세가 ‘백로하강(白鷺下降)’ 형국의 ‘두루미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며, 백제 말기에 축성된 봉암산성과 벌떼가 앉은 듯한 ‘벌바위’가 있다. 신덕은 덕재 앞의 분지 같은 지형에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다.

전통을 지켜가는 사람들

외망 박태식(56) 씨의 딸이 광양제철고를 다닐 때 자기 집에서 윤동주 시인의 원고를 보관했다는 사실을 말하여 널리 알려지게 됐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집의 관리가 고민이다.

내망 채충환(63) 씨는 채구연 의사의 15대손으로서 역사 기록을 명확하게 살피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며, 광양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료를 제대로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장재 조옥순(58) 씨는 마을 부녀회장으로 20년째 봉사하면서 형편이 되는 대로 베풀고 살아가려 하는데, 부군 강경구(63) 씨가 북을 치는 재미에 빠져 있어서 풍물 교습을 함께 한다.

구룡 백금자(69) 씨는 풀 베고 나무하는 일이 재미나서 중학교를 안 가고 농사와 살림살이의 온갖 일을 다한 여장부다. 마을의 새 주소가 ‘청룡길’보다는 ‘구룡길’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선소 김길수(60) 씨는 벚굴을 잠수부가 물속에 들어가 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5m 길이의 집게로 찍어내는 조상들의 채취 방법을 전승하고 굴 구이 영업을 처음 시작했다.

신답 김봉래(66) 씨는 전어잡이 소리 보존회장을 10년 지내며 시연을 다녔으나 전어 잡이 뱃놀이의 소리꾼과 풍물의 대를 이어가도록 행정의 지원과 주민의 참여가 시급하다고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