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박두규 자유기고가] 마을의 매력 사람의 향기
  • 광양뉴스
  • 승인 2012.07.23 10:03
  • 호수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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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랑의 조산 큰 바위에 새겨진 글귀와 김상의 송덕비.

재 너머 마을이 기름진 들판을 껴안다
(진상면 탄치 지랑 창원 방동 청도 목과 입암 삼정 마을)

호남정맥의 기세는 진상면의 동남쪽으로 팔팔하게 내달아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고개들이 있다.

매치재와 뱀재는 일찍부터 차도가 뚫린 큰 고갯길이고, 상재는 진상을 상도면(上道面)이라 하고 진월을 하도면(下道面)이라 구분한 기점이었지만 한적한 길목이다.

고개 마루에서 보면 수어천의 물길을 막아선 방천이 팽팽한 활줄처럼 펼쳐진 안에 기름진 들판을 안았다.
방천을 막아 청암평을 만든 공로를 기리는 김상의 송덕비가 지랑에, 박순갑 시혜비가 삼정에 있다.

 

들판을 굽어보는 산마루 마을
탄치(炭峙)는 숯골로 ‘숯이 묻힌 고개 마을’이다.

매치 고개는 진월면과 다압면 경계를 지나 하동 다리로 연결되고 ‘매치굴’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철도 터널이다. 지랑은 몰랑몰인데, 산마루에 있어서 몰랑 또는 몬당이다.

마을 앞 조산(祖山) 바위에 “생반구룡(生盤九龍)”을 새겨 용의 봉우리임을 알리고, 김옥주 김선주 두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창원은 곡식 창고가 있었던 창촌, 당산나무가 으뜸이라고 한 원당, 팽나무 아래 정자를 지은 ‘팽정’이 바뀌어 부른 평정 마을을 포함한다.

방동(芳洞)은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방안 같다고 방골이라 한 것을 잘못 기록했다.

청도에 속하는 청룡은 지랑의 왼쪽 산등이 구슬 가지고 노는 용의 모습이고, 도원(桃源)은 복숭아꽃 자리의 뿌리이며, 중양(中陽)은 연중 햇살이 많아 살기 좋다는 마을이다.

목과는 큰 모과나무가 있었고 산골마을이란 뜻인데, 수어천 이름의 유래가 되는 ‘숭어소’에서 동짓달 추운 때에 숭어를 잡아 부친의 제사상에 올렸다는 효자의 얘기가 전한다.

입암은 ‘선바우골’로 마을 뒷산에 우뚝 선 바위가 있다. 삼정(三亭)은 정자촌이며 3개의 정자가 있었다. 진월면에 속했다가 83년 진상면으로 옮겼다.

여러 경험을 안고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

탄치 이중기(66) 씨는 66년도 기찻길 공사를 추억하며 자신이 젊은 편인 농촌이 한스럽다.

창촌 안길성(71) 씨는 교원으로 근무할 때부터 가꾼 과수원을 관리하며 경로당 총무로서 노인들 모시고 사는 일을 재미로 여긴다.

퇴임 교원들이 모여 장학금 조성한 것도 기쁨이다. 지랑 노영권(82) 씨는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유공자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철원 평야를 차지하려고 1주일간 이어진 전투에서 9사단 병력이 50여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박격포를 다루는 화기소대원으로 후방에 있어서 비참한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이근휘(61) 씨는 백마부대로 베트남전에 참여하여 중상을 입었고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청도 황병찬(34) 씨는 대학에서 도자기를 전공하고 고향에 돌아와 ‘토진도예’를 운영하며 진상역 앞에 갤러리도 열었다.

목과 박정규(76) 씨는 취나물을 하동으로 팔러 다니는 길에 마을 사람들의 부탁까지 받게 되어 02년 농업상담소장과 함께 ‘취나물연구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아 소득을 올린다.

삼정 박용규(71) 씨는 22세부터 20여 년 동안 갈꽃 빗자루 만드는 일에 전념하여 기능경진대회에 여러 차례 입상도 했으나 이용자가 줄어들어 그만두고 비닐하우스에서 애호박을 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