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칼럼] 화 병(火病)
[한방칼럼] 화 병(火病)
  • 백건
  • 승인 2007.01.03 21:29
  • 호수 19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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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은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민간사회에서 널리 일컬어졌던 한의학 용어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권위적 가정구조와 관련해서 여성에게 잘 발현되는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 관련 증후군입니다. 

 지금은 덜하겠지만,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유교적 가치가 여성의 가장 큰 덕목으로 집단무의식 속에 면면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여성들은 시부모님 같은 윗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솔직히 표현할 수 없게 되고 화가 나더라도 참고 억압하여 가슴속에 담아 두어야만 합니다.
 
이런 일이 쌓이다 보면 감정의 응어리가 커지게 되고 이것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수위에 오르면 여러 신체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주된 증상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자주 한숨을 쉬고, 목구멍, 가슴, 상복부에 주먹만한 덩어리가 뭉치는 느낌이 들고,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기도 하며, 얼굴이 열을 받아 화끈거리기도 하고 몸에서는 오히려 한기가 들어 오싹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정신이 없다’, ‘미쳐버릴 것 같다’, ‘뛰쳐나가고 싶다’ 등의 심리적 불안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남편의 외도나 폭력, 시댁과의 갈등, 자녀교육문제, 경제적 의존, 사회적 지위하락 등 어느 한두 가지 스트레스 상황 속에 있다면 거의 화병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특히 40대 이후의 주부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참고 인내해야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에 굴복한 나머지 감정을 적절히 분출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다 결국 병을 만들게 됩니다.

또한 이즈음에 이르러 갱년기 전후에 있게 되므로 자율신경실조증이 나타나기 쉬어 화병을 더욱 촉발하게 됩니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화병의 가장 큰 원인은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 즉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우리나라의 가족 및 사회문화에 대한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사회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우선 배우자가 화병의 제공자일 확률이 가장 높으며, 배우자가 직접적인 원인제공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배우자의 가족 등일 경우가 많아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을지 모르며, 그도 아니라 하더라도 화병을 방치한 책임은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화병으로 진단되면 환자 본인은 물론 배우자의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선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대화 중 잘잘못을 따지거나 인과를 논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쉬우므로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됩니다.

 환자 스스로는 배우자나 타인에게 치료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배우자가 환자가 기대치에 부응하는 일은 사실상 드물기 때문입니다.
 
우선 화병이 생긴 탓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마음가짐을 버리도록 하고, 여가활동이나 스포츠, 취미생활이나 종교 활동을 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화병도 심리역학적인 면으로 볼 때, 화라는 에너지가 쌓이는 것이므로 이러한 생활이 과잉된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한방에서는 "정신과 육체는 나눌 수 없는 하나"라는 한의학 이론에 입각하여 오장과 각 장기에 깃든 정신요소와의 역학관계에 따라 오장의 기능을 조절, 강화함으로서 자율신경의 안정을 도모하여 화병을 치료합니다.

침구치료로는 자율신경을 조절해주는 혈 자리에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며, 약물치료로는 화를 내리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가미소요산’이나 ‘온담탕’ 계열의 약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