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와 ‘족벌언론’ 그리고 ‘지역언론개혁’
‘퓰리처’와 ‘족벌언론’ 그리고 ‘지역언론개혁’
  • 광양넷
  • 승인 2007.01.03 21:29
  • 호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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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신년사
현대 저널리즘의 창시자 혹은 신문왕이라 불리는 '퓰리처', 그를 기리기 위해 1917년 제정된 저널리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의 주인공에 대한 전기인 <퓰리처>(데니스 브라이언 지음·김승욱옮김·작가정신출간)를 언론계 선배로부터 송년선물로 받았습니다.

삐뚤어지지 말고 똑바로 걸어가라는 당부 혹은 기대를 함께 섞어 선물한 두툼한 책을 받아들고 부담이 컸습니다. 첫째 부담은 그 책을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 시간이 있을까? 하는 현실적 부담이었고 둘째는 똑바른 언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었습니다.

책 전체를 읽을 겨를이 없어 우선 앞부분만 읽었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일그러진 우리의 언론초상이었습니다. 황제로 등극한 과점언론의 사주와 신하 혹은 졸개로 전락한 기자들의 초라한 모습이 스치면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반추하기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헝가리의 가난한 청년 '조셉 퓰리처'는 열 여덟 살에 남북전쟁에서 싸울 병사로 미국에 팔려왔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나자 독학으로 공부해 변호사, 의원, 기자를 거치면서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와 '뉴욕 월드'를 소유한 신문사 사주로, 수백만 달러의 재산을 모은 인물로 성공했습니다.

'뉴욕 월드'는 독자가 100만 명에 달했던 1890년대에는 대통령(클리블랜드)을 당선시키고, 미국과 영국의 전쟁을 막기도 하고, 부패한 보험회사들을 폭로해 문을 닫게 하기도 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빈민들에게 세를 주는 욕심 많은 집주인, 부패한 경찰, 부도덕한 정치인들과 싸워 승리하는 등 언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칭찬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칭찬하지만 비판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권력의 힘으로 족쇄를 채우고 공격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욕 월드'를 훌륭하고 강한 언론사라고 찬사를 보내고 또 이 신문의 사설을 최고의 사설로 꼽으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파나마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땅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저지른 뇌물 수수와 독직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밝히자 퓰리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감옥으로 보내려고 했습니다.

퓰리처도 한 때, 경쟁 신문사인 '뉴욕 저널'보다 신문을 더 팔기 위한 경쟁과정에서 과장보도와 소문, 거짓말 등으로 독자를 현혹하는 '황색 신문(yellow press)'의 저급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퓰리처는 이를 통렬하게 후회하고 반성하며 명성을 회복했지만 그의 생애에 부끄러운 기록인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과점언론 사주처럼 세금을 떼어먹다가 감옥에 가거나 언론사를 좌지우지하는 황제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신문 편집인으로 세계 언론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또 한국의 일부 언론사주처럼 족벌체제로 운영하지도 않았으며 가문 대대로 언론사를 지배할 생각도 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신문사를 넘겼습니다.

퓰리처는 마흔 두 살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인 예순 네 살까지 눈먼 병자로 노후를 보냈습니다. 또 정신적 고통과 조울증 등의 병에 시달리다가 19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막대한 재산은 유언에 따라 200만 달러는 컬럼비아 언론대학원 개설과 퓰리처상 제정에 쓰여졌고 미술관과 교향악단에 각각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사회에서 쌓은 재화를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참 언론인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뉴욕 타임스>의 아서 크록이 퓰리처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조셉 퓰리처는 빛나는 개성, 권력을 소유한 가운데 겸손함. 그리고 불운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었다. 그는 위선적인 말, 속임수, 부당함, 부패를 증오했으며 스스로도 이런 짓을 저지를 줄 몰랐다. 그는 유머와 헌신의 재능을 동시에 지닌 소수의 사람들 중 한 명이다"

'퓰리처'의 생애를 섭렵하지 못했지만 다음의 글만큼은 조선, 중앙, 동아를 사주를 비롯한 언론사주와 학벌도 좋고 연봉도 많은 월급쟁이 기자들과 함께 읽고 싶습니다. 다음은 퓰리처가 자신이 신문사인 '뉴욕 월드'의 제임스 크릴먼 기자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나는 경찰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공공 서비스 부문의 잘못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공격하고 싶다. 나는 신문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르치는 도덕 교사라고 믿는다. 신문은 반드시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만약 신문이 형세를 관망하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나는 무덤 속에서도 돌아누울 것이다. 신문은 정부를 경영해서도 안되고 관세를 매겨서도 안 되지만 반드시 대중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

<언론인>이라는 직업은 정말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증권회사와 프로 운동선수들 가운데 고액 연봉의 직업인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언론인이라는 직업에 견줄만한 매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사람 구실하고, 인격을 대신하고, 신분을 보장해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사회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와 감시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동의합니다. 그것은 법 혹은 제도 혹은 공권력이기도 하지만 그것까지 묶어서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언론의 감시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는 전제 조건에서 동의하는 수준입니다.

그것이 부당한 권력일 경우, 그것이 부패한 자본일 경우, 그것이 부적절한 행위라면 정당성을 지닌 언론의 펜대 하나에 의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도청사건을 끝내 부인하다 기자에 의해 거짓말이 탄로나 세계의 대통령에서 물러난 닉슨이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위대하다"는 고전적인 명언이 아직도 유효한 듯 합니다.

역사와 권력을 바꿀 수도 있는 직업인 언론인, 그만큼 책임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언론인이라는 직업이 무기력한 직업 혹은 위험한 직업으로 전락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학벌 좋아 기자가 된 사람들은 월급쟁이로 전락했고, 부당한 권력을 감시하고 나선 가난한 기자들은 송사라는 위험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물론, 잘못된 언론보도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이비 언론에 의한 피해와 달리 부당한 권력의 횡포로 악용되고 있는 명예훼손과 손해배상은 언론의 사명을 다하려는 기자들을 위축시키고 있습니다.

'일단 걸고 보자', 언론보도에 대한 정당성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사용되는 법적 대응으로 인해 저 또한 피곤함을 겪은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일단 걸어서 발목을 묶으려는 언론개혁의 암초들, 하지만 역사의 발전이 순풍에 돛 단대로 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지역언론개혁은 지역의 몫입니다.

지난해도 분주하게 보냈지만 정해년 새해에도 각오를 다집니다. 광양신문은 이어갈 것은 이어가야 하겠기에 지역언론개혁에 대한 각오와 다짐을 되새겨 봅니다. 적어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 인정하는 최저한의 금도(襟度)만 있다면 지역언론개혁은 이러한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킬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고 이념이나 집단 이기심을 앞세워 편향된 논리로 염색하거나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 ‘진리’로 우기는 풍조를 불식시켜야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주지하겠습니다.

광양신문은 지역의 대표신문으로서 지역언론개혁의 모퉁이 돌로 쓰여지기를 소박한 마음으로 가져봅니다.

독자여러분 정해년(丁亥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저마다 새로운 희망을 가슴에 품고 2007년을 맞이하셨겠지요? 그 희망이 당신을 지탱케 하여주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