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눈 오는 날
  • 백건
  • 승인 2007.01.18 00:51
  • 호수 1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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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내린 눈이 건너편 공원이며 산에 소복이 쌓여 있다. 드물게 내리는 눈이라 반갑기 그지없다.

베란다로 나가 자동차를 보니 온통 하얀 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 길이 얼면 미끄럽지 않을까 적이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반갑고 설레는 마음에 이내 사라져버린다 .
 
방학이라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이는 행여 눈이 녹아버리지 않을까 안달복달 애를 태우며 서성인다. 하늘을 보더니 떠오른 해가 못마땅한지 연신 ‘해가 떠버렸네, 에이…’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엄마, 우리 나가자! 눈싸움 하자” “야~ 밥 먹고 할거 하고 나가야지” 이런 저런 절차 후에 모자에 장갑에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갈까? 우산공원, 아님 성불계곡?”

아이는 공원으로 나는 성불계곡으로 가기를 원한다. “공원은 자주 갔으니까 오랜만에 성불계곡 한번 가보자.. 거기 가면 눈이 더 많이 쌓였을 거야..좋지? “응” 맘을 맞춘 우리는 성불계곡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먼 산 꼭대기에 쌓은 눈을 보고 꼭 에베레스트 같다고 아이가 말한다. 언제 보기라도 한 것일까?? 산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컴컴하고 길도 약간 얼어 있다. 히끗히끗 눈발이 날리는 것도 같은데, 조심조심 소심하게 운전하면서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바람이 싸하게 얼굴로 감겨온다.
 
역시 산 밑에서 부는 바람과는 느낌이 다르다. 날이 선 듯 날카롭고 청량한 줄기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파고든다. 나뭇가지마다 두껍게 눈꽃이 피어 있는 계곡 풍경에 감탄하면서 여유롭게 산에 오른다.
 
계곡으로 흐르는 짙은 초록의 물이 눈이 시리게 차고 맑아 보인다. 여러 해 느끼는 거지만 성불계곡은 계절마다 다른 색깔의 아름다움을 펼쳐놓는다.

특히 겨울은 때 묻지 않은 정결한 눈과  고즈넉한 산사가 어우러져 그 운치를 더한다.

그래서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아이는 길 가장자리에 쌓여 있는 눈을 뭉치느라 여념이 없다. ‘와~ 눈 많다’ 를 연발하면서 좋아 어쩔 줄 몰라 한다 . 분명히 저 눈뭉치로 나를 공격할 것이다. 해마다 그랬으니까. 아니나 달라 저 머리통만한 눈 뭉치를 들고 나를 쫓아온다.

이럴 땐 겁먹은 듯 막 도망쳐 줘야 좋아한다. 깔깔거리면서 열심히 뛰어오는 아이의 양 볼이 발그레하니 건강해 보이는 게 여간 사랑스럽지 않다.

장난기 가득한 눈에는 언제 한번 제대로 맞추나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이쯤에서 한방 맞아줘야겠다. 서로 던지고 맞고 도망가다 넘어지고 난리가 아니다.

힐끔힐끔 곁눈질하면서 재빠르게 눈 뭉쳐서 달아나고 정말 스릴 만점의 재밌는 시간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잠시 휴전한다 .“ 사진 찍자! 예쁘게 찍어서 싸이에 올리자~” “엄마, 나 눈 위에 누워도 돼? ” “엉”  “ 나 구를 때 찍어” “얼른 굴러..그럼” 누웠다 굴렀다 아주 신이 났다.
 
눈 뭉쳐서 전봇대 맞추기도 하고, 여기 온 기념으로 뭐 하나 만들자고 한 아이의 말에 따라  작은 눈사람도 만들었다. 

해마다 눈이 오는 날은 아이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추억을 만든다. 이 모든 시간들이 아마 아이에게 흰 눈처럼 눈부신 빛깔로 기억 될 것이다.

그래서 먼 훗날 돌아보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유년의 소중한 자산이 되리라 생각한다.

어디서 이렇게 재미난 놀이를 할 것인가. 오늘도 눈 온 날 추억 만들기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