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레 도장 새기며 늘 남편을 만나지”
“정성스레 도장 새기며 늘 남편을 만나지”
  • 정아람
  • 승인 2012.10.15 09:50
  • 호수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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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에서 도장 파는 여수복 씨의 ‘사부곡’


‘슥삭슥삭…또각또각’
진상면 섬거리 스타사진관 옆 작은 가게 방 한 켠에서 들려오는 소리. 작은 방 한 켠에는 낡은 밥상과 오래된 철 필통 그리고 오래된 칼을 잡고 도장을 파고 있는 여수복(59) 씨가 있다. ‘달그락’하고 철 필통이 입을 열면 정갈하게 갈린 칼들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여수복 씨가 직접 도장을 파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도장은 남편이 하던 일이었는데 남편이 떠나고 난 후 먹고 살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는 그녀. 여 씨의 고향은 경남 하동이다.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하동여자가 진상 남자한테 시집을 왔다. 딸 하나,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중 1995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남편을 떠나보냈다. 남편의 허망한 죽음 앞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당장 아이들과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밥 한 숟갈 목구멍으로 넘기기 힘들었던 시절. 바짓가랑이 잡고 배고프다고 우는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 했기에 어렵사리 남편의 업을 이었다. 죽어도 칼은 잡기 싫었지만 지인들의 간곡한 설득 끝에 여 씨는 도장을 파기 시작했다. 거꾸로 파야 제대로 찍히는 도장, 거꾸로 도장을 판다는 것은 여 씨에게 세월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마음보다 더 마음의 짐이 됐다. 잃고만 살아 온 것같은 그녀의 삶에 도장은 곧 ‘남편’이었다. 


여 씨는 “내가 파는 이 도장은 보통 도장이 아니고 떠나간 내 남편”이라며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던 삶의 밑천이었다”고 말했다. 여 씨는 남편이 떠난 자리가 믿어지지 않아 물건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여 씨는 남편이 그리워서인지 자꾸 눈물을 보였다. “아 내가 지금 뭘 파는 거지?” 도장을 파면서 눈이 침침하다는 핑계를 내보이며 쓱 눈물을 닦는다.

여 씨는 “컴퓨터를 배워 작업하면 편하겠지만 그래도 손으로 직접 제작하며 손님들에게 나눠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서울에서 땅을 사러온 손님 한 분이 들어온다. “도장을 깜빡 하셨구만” 여 씨는 손님 얼굴만 봐도 점쟁이처럼 척척 알아맞힌다. 그는 “돈 받고 파주는 도장인데,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라며 “오히려 감사한 건 난데 말이야”고 전했다. 가장 중요한 일에 쓰이는 도장. 거꾸로 파야 제대로 찍히는 도장. 가끔 삶이라는 것도 거꾸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종이에 올바르게 찍힐 수 있지는 않을까. ‘샥샥’ 오늘도 여전히 여수복 씨는 손님 한 분 한 분의 마음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도장을 찍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