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된다고 펄쩍 뛰었지만…이제는 든든”
“요리사 된다고 펄쩍 뛰었지만…이제는 든든”
  • 이혜선
  • 승인 2012.11.05 09:29
  • 호수 48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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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한정식 해뜰날 운영하는 조옥순ㆍ강병주 모자의 세상사는 이야기


유학을 다녀온 아들이 어느 날, 요리를 하겠다고 했다.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엄마 속 썩인 적 한 번 없던 아들이었기에 배신감이 더 컸다. 조옥순ㆍ강병주 모자. 현재 백운고 맞은편에서 퓨전 한정식 ‘해뜰날’을 운영하고 있는 두 모자의 이야기는 부모와 자식의 끈끈한 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체육학도였던 나, 하지만 꿈은 ‘요리사’

강병주 씨는 진월면 장재에서 태어났다. 진월초-진월남중-매산고를 졸업한 그는 운동은 물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고려대 사회체육학과에 진학한 병주 씨의 인생은 정석대로 진행될 줄 알았다. 하지만 제대 후 어학연수를 위해 떠난 미국에서 그의 앞날은 완전히 뒤바뀐다. 미국에서 셰프로 인정받으며 일하고 있는 사촌 동생을 보면서 자신도 프로 요리사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 이후 그는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방일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병주 씨. 마음은 이미 요리사의 꿈을 향하고 있었다.

한 번 마음먹은 요리사의 길은 거침없었다. 학원을 다니고 현장에서 실무를 배웠다. 한식은 물론 퓨전 일식, 정통 일식,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등 다양한 요리의 세계를 하나둘씩 배워나가며 부지런히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날마다 칼을 잡다보니 손은 온통 베인 상처로 가득했다. “하루에 13시간 씩 요리를 했는데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어요. 칼질이 서툴러 손가락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하루 쉬고 다음 날 바로 또 일했죠. 그래도 재밌기만 했어요.”

요리사 된다는 말에 눈물이 앞서

앞날이 창창하던 아들이 요리사가 되겠다는 얘기에 어머니 조옥순 씨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병주가 누구던가. 20살에 결혼해 8년 만에 얻은 소중한 보물이었다. 어렵게 얻은 아들은 착하고 똑똑하고 바르게 자랐다. 어머니로서는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병주가 태어났을 때 그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 다음해에 딸 은엽이가 태어나고…둘 다 부모 속 안 썩히고 공부도 잘 하고 얼마나 착했는지 몰라요.” 옥순 씨는 아들이 당연히 체육선생님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요리사가 되겠다는 말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그 동안 닦아온 길을 모두 접고 새 삶을 개척하겠다는 아들의 고백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명문대와 유학을 보내는 일이 시골 촌부에게 쉬운 일이었겠는가. 유학을 왜 보냈을까 후회만 가득했다. 어머니는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자식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아들의 결연한 눈빛을 보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3개월 정도 반대했었어요. 그런데 본인이 너무나 확고하더라고요. 결국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줬어요.”

병주 씨가 해준 가장 맛있었던 요리를 묻자 2009년 추석 때 먹었던 도미머리간장조림과 제육볶음을 꼽았다. 가족들에게 처음 솜씨를 선보인 날이었다. 아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가 이것을 먹을 수 있을까…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떨리는 손을 진정하고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아들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았다. 옥순 씨는 “우리 병주가 정말 열심히 했구나…이젠 내가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모자의 ‘해뜰날’은 이제부터…

결혼 후 서울에서 지내던 병주 씨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식당을 열기 위해서였다. 지난 5월 말, 모자는 퓨전 한정식 전문점 ‘해뜰날’을 열었다. 병주 씨는 주방을 맡고 옥순 씨는 나머지 모든 것을 담당했다. 옥순 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해보는 식당일이 부쳤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뭐든지 대충하면 실패하기 마련이잖아요. 정성을 쏟는 것이 체력을 쏟는 것이더라고요.” 병주 씨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며 어머니 손을 잡았다. “식당 개업은 제가 서둘렀어요. 내 나이가 이제 60이 다 돼 가는데 더 나이 들어서 시작하면 내가 병주를 도울 수 없잖아. 지금은 내가 병주한테 힘이 될 수 있는 나이니까. 부모들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병주 씨는 “항상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시는 부모님께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뜰날이 문을 연지 이제 6개월 째.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모자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음식이 정말 맛있다는 손님들의 말 한마디에 고생이 싹 가신다. 두 모자의 바람은 해뜰날이 광양을 넘어 전국 맛집이 되는 것이다. 광양에 오면 꼭 한번 들러야하는 그런 곳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이들의 꿈이다.  “제 삶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신 게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항상 제 편이 되어 주시니까요, 뭐든 맘 놓고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제 보답해드려야죠.” 모자의 야무진 꿈은 오늘도 계속 된다.  

모자는 팔방미인

조옥순ㆍ강병주 모자는 본업인 식당 경영 외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조옥순 씨는 재향군인회 여성 감사부터 시작, 새마을부녀회 진월면 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생활개선회 부회장, 농가주부 진월면 회장 등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조 씨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일복이 많아서인지 바쁘게 활동한다”면서 “내가 쌓은 공덕이 자식과 지역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체육학도인 병주 씨는 운동에 남다른 소질이 있다. 태권도 공인 4단인 그는 스노보드 강사,  헬스 트레이너 등 운동에 관한한 만능 재주꾼이다. 사진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어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세상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병주 씨는 “기회가 되면 광양신문에 요리세상 같은 코너를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쉽게 배울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