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의 현재성, 그리고 아픈 역사 [전흥남 교수]
‘여순사건’의 현재성, 그리고 아픈 역사 [전흥남 교수]
  • 지리산
  • 승인 2007.10.25 08:49
  • 호수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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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가을 하늘은 유난히 맑고 청명하다. 황금 물결로 출렁이던 들녘도 어느새 빈 들판으로 변해가고 있다. 수확의 계절임을 실감케 한다. 우리네 삶도 왠지 부산해진다. 한 해를 결산하고픈 마음에서인지 이맘때쯤부터 다음 달 중순까지 남녘에서는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를 비롯해 다채로운 가을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아! 그런데 이맘때쯤이면 이곳 남녘에서는 굴곡진 현대사의 아픈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여순사건’이다. 지난 10월 19일은 ‘여순사건’이 일어난 지 59주년이 되는 날이다.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 신월리에 주둔하던 제14연대 소속 좌익 성향의 일부 장병들이 주동이 되어 민중봉기를 꾀했던 것이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과 경찰이 투입되면서 전남 일원 특히, 여수와 순천, 광양, 보성, 고흥, 구례 등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민족적 비극으로 확대된 사건이다. ‘여순사건’으로 희생된 사망자의 수가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관련 자료집에서 400여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만큼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여순사건’ 피해자 접수사항을 분석한 결과에서 한 조사관은, “여순사건은 전남 동부 6개 시군으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남·북 및 경남 함안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희생된 원혼들은 물론이거니와 이 사건으로 인해 적지 않은 세월을 유형·무형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어디에도 하소연을 못하며 한을 삭이며 살아온 유가족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어찌 말로 형언할 수 있으랴.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여순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서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의 명예회복을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다. 그나마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금기의 사건’으로 치부하려 할 때 여수지역사회연구소와 전남 동부지역사회연구소 등 민간연구단체 중심으로 사건 당시의 생존자의 증언을 녹취하고, 또 사건과 관련된 자료집을 매년 꾸준히 발굴해서 연구 성과를 낸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최근에 이르러 학계는 물론 각계에서도 이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즈음에 이들 민간연구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해서 학술대회와 기념행사 그리고 추모행사를 통해 ‘여순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점도 높이 사야 할 대목이다. 올해 역시 ‘여순사건’  제59주기 기념행사(‘여순사건의 진실과 화해를 위하여’)를 다채롭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25일까지 전남 동부 6개 시군에서 전교조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공동주최로 여순사건 공동수업을 일제히 실시했다.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 현대사의 암울한 한 쪽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점은 적지 않은 의의를 갖는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여순사건의 현재적 상황과 운동방향'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도 열렸다. 세미나에서는 내년 60주년을 맞이해서는 추모행사 내용에 대한 새로운 사업과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점 등이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전남 동부지역 일원에서 역사강좌, 사진전시회, 인권영화제, 추모 풍물극 등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59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우리는 ‘여순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채 베일에 싸여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성격규정이 유보된 채 아직도 ‘사건’에 머물고 있음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야말로 야만과 광풍의 한 시절이 한반도 남녘을 들쑤시고 지나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이 ‘여순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구명하는 문제일텐데 이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이해 당사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 경우가 많고, 또 당시 생존자의 증언도 처해진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달라서 채록자가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는 아직도 냉전적인 이데올로기적 도그마로부터 탈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하나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피해자 유족들이 피해접수조차 못하고 숨기고 있는 것은 여순사건이 아직도 ‘반란사건’이라는 70년대 의식에 머물고 있고 금기시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외면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행위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자칫하면 이념논쟁의 재연으로 지역간 또는 이웃 간에 불신이나 불화가 생기지 않도록 상생과 화해에 초점을 두는 세심한 배려도 요구된다. 단순히 한풀이의 역사로 노정되어서도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여순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동참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여순사건’과 같은 민족적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소망하는 실천의지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이 때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접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 동안 일상사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면서 재중전의 기회를 삼았으면 싶다. 동시에 현대사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면서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남겨주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시간도 가져볼만 하다.

역사는 단지 지나간 사건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끈이자 지혜롭게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