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갑시다. 물따러…”(상)
“산에 갑시다. 물따러…”(상)
  • 태인
  • 승인 2008.03.13 09:13
  • 호수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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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커먼 모자 밑으로 남편 눈길이 미소와 함께 쓰윽~ 날아온다. 미소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웬일이야?…정말?…할 수 있겠어?…힘들텐데…고맙네….
“지난번보다는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걱정말아요”
솔직히 산을 오르내리며 물 받는 일이 썩 내키지도 않고 자신도 없지만,산에 한 번 다녀오면 끙끙 앓는 남편한테 늘 미안했기 때문에 예약손님이 없는 날 큰소리 한 번 쳐 본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다. 약수를 매일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매일은 커녕 일주일에 한 번이나 맛 볼 수 있었을까, 그것도 실컷 마시는 게 아니다. 잘 해야 서너 잔이다.
지난해 이맘때쯤 파주에 사는 후배들이 내려와 약수를 마시고난 다음날 같이 산으로 몰려갔던 적이 있었다. 아들의 친구들 가족이었는데 우리까지 네 가족이 신이 나서 산을 올랐다.
하지만 난, 당시 30개월이 채 안된 딸을 핑계로 산막에 앉아 커피 끓여마시며 클래식과 새들의 합창을 듣고 있었다. 3~40분이 지났을까, 조금씩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음악도 새소리도 들리지않고 남편을 부르면 메아리만 산에 걸리는 것이다. 전화를 하니 “아 이사람아,이게 그리 간단한 일인줄 알아?” 하고 핀잔(옆에 사람들이 있으니 짜증은 못내고 점잖게 핀잔했으리라)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난 한 번도 물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물 받는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힘이 얼마나 드는지 알 턱이 있나. 그러니 커피 마시며 음악들을 생각이나 하지…

 한 시간쯤 지나서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과 그 엄마가 옷에 도깨비바늘만 잔뜩 붙여갖고 내려왔다. 힘들어하는 딸을 달래서 물 받는 거 한 번 구경하고는 도깨비바늘 떼느라 한참을 서 있었단다. 간신히 다 떼고 내려오다가 또 잔뜩 이고지고 내려온 것이다. 셋이 모여앉아 도깨비바늘 떼는 풍경이란 마치 이 잡는 원숭이들 같았으리라. 덕분에 내 지루함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두어 시간이나 됐을까, 추워서 몸을 움츠리고 산을 올랐던 사람들이 개선장군처럼 나타났다. 아이들은 다람쥐마냥 산을 뛰어다니며 노는 게 더 즐거웠던 모양이고 찬바람에 얼굴이 빨개진 어른들 이마에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미안한지 벌떡 일어나 그들의 공을 치하하느라 잠깐 바빴다. 
일행중 누군가가, 전날밤에 마신 고로쇠수도 이렇게 받았을텐데 아무 생각없이 마셨다고,이렇게 힘든 일인줄 알았다면 아껴 마셨을텐데,해서 다같이 웃긴 했지만  그동안 고생했을 남편한테 미안해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후로도 난 물받는 일에 몇 번만 동참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높고 가파른 산은 남편이 맡고 나는 낮은 쪽만 담당했으므로 남편의 지친 심신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해가 바뀌어 올해도 고로쇠작업(물을 받기 위해 나무에 구멍을 뚫는 일, 비닐에 무슨 꼭지를 동여매는 일, 그 꼭지를 나무구멍에 끼우는 일, 받은 물을 부을 통에 호스를 연결하는 일 등등 헤아리지도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은 마을 이장의 도움을 받아 거의 남편 혼자 하다시피 했다. 나 나름대로는 가게일이야, 집안일이야 할 일이 많다 말하지만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첫물을 받아왔을 때 남편은 힘들어하기보다 기뻐하고 처음 겪는 일처럼 신기해했다. 감사하는 마음과 올해 고로쇠수가 많이 나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큰언니네와 함께 조금씩 나눠 마셨다. 귀한 물이라 우리는 마음껏 마시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아이들이 즐거이 마시는 모습만으로도 우린 행복하니까.

지난 설날 시댁에서, 우리가 들고간 고로쇠수를 식구들이 모여 마시는데 형님이 문득 “아니,자네는 집에서 많이 마실텐데 왜 우리 주려고 갖고와서는 여기서 마셔?” 하는 바람에  식구들이 박장대소 했다. 순간, 정말로 많이 마시는 나를 발견하고는 엄청 쑥스러웠지만 바로 대답을 드렸다.

"아, 들켜버렸네…저이가 얼마나 이걸 힘들게 받아오는데요, 미안해서 집에서는 한 잔도 맘놓고 못마셔요"
그 한 마디로 난, 남편한테는 ‘내 당신의 고생을 알고있소’하는 마음과 가족들한테는 ‘많이 못 들고와서 죄송합니다’하는 마음을 다 얘기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