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성찬(盛饌), 소통의 부재
말의 성찬(盛饌), 소통의 부재
  • 백건
  • 승인 2007.01.31 22:48
  • 호수 1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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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 사회의 세태를 보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말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주권의식이 강하고 민도가 높아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두고 무슨 딴죽을 거냐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말이 많은 사회는 침묵하는 사회보다 백번 낫다.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야말로 죽은 사회다. 사회가 역동적이고 언로가 트이면 말이 많은 법이다. 문제는 말은 많되 제대로 소통되지 않고 진실된 말이 부재하다는 점에 있다.

더욱이 말을 하는 편에서는 말이 안 통한다고 답답해하고, 듣는 입장에서는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면서 핵심을 외면하고, 심지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말의 성찬, 소통이 부재하는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면에서 바람직스럽지 않다.    

우선 대통령의 말에 말들이 많은 점부터 상기해 보자. 일국의 대통령의 말속에는 통치철학과 향후 국정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또 발언의 진위 여부와 시점의 적절성 문제도 논란거리를 제공하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이것의 파장이 확대재생산되는 속성을 지닌다.

몇 년 전 대통령이 일부 정치인을 잡초에 비유한 이른바 ‘잡초론’을 두고 정치권은 물론 네티즌 사이에 공방이 뜨거웠던 적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이 쓴 원문을 놓고 볼 때 지극히 원론적이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정치개혁을 논하는 과정에서 집단이기주의 기승, 세대간의 갈등 등 우리 사회의 개혁을 가로막는 폐단에 대해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과 아울러 회초리 얘기를 했다.

국민들의 따끔한 질책과 비판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음을 피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잡초라는 단어가 갖는 상징성과 함축성을 상기하면서 모욕감을 느끼고,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 중에는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혹은 제거)시키려는 정략적 의도가 숨어있다고 해석하며 반발하지 않았는가.

또 지난 연말에 공식석상에서 다소 격정적으로 여과되지 않은 표현을 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부터 말들이 많았다. 새해 벽두에 들어서는 대통령의 개헌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부터 각기 다양한 반응을 보이다 지금은 다소 소강국면이다. 대통령의 말을 동일 선상에 놓고 볼 수 없을 게다. 말의 성격이 다소 다르다.

지난 연말의 경우는 여과되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에 대한 언어의 격(格)에 대한 논란이었고, 새해 벽두의 개헌 관련 발언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그 파장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연설 및 국정운영의 스타일로 볼 때 앞으로도 그런 불씨를 여전히 안고 있다고 봐야 옳다.

 언어는 같은 말이라도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이나 상황(context)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속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언어의 이런 점을 대체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간혹 놓치고 만다.

복잡하고 다기(多岐)한 사회일수록 본래의 뜻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가지 다른 해석과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일차적으로 국가의 지도자로서 지켜야 할 언어의 품격을 유지하는 게 온당하다.
 
국민들 일부(혹은 정치권에서)가  진정성을 몰라주는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고, 일부 언론의 보도와 논평이 마음에 안 들어도 공식석상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자제하는 게 순리다. 시비거리를 만들어 소모적인 논쟁을 부추길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언어의 구사가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의 연설 스타일이 역대 대통령과 달리 공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장점도 지닌다.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게 하는 어법이다.
 
문제는 이런 장점 못지않게 자칫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질 빌미를 주고, 그러한 논쟁의 폐해는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는 점도 늘 염두에 두고 이것을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언어가 개인은 물론 사회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전달하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사람들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고 그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인 신뢰의 부재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신뢰의 부재는 당연히 의사소통의 단절과 곡해를 초래한다. 

둘째로는 우리 사회가 상생의 측면보다 대결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습성과도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얼핏보면 개성이 강조되고 다양성이 자리하는 듯하면서도 실제 내용은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회상(社會相)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그 정도가 더 심한 편이고 심지어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더욱이 올해는 대선을 앞둔 만큼 정치권에서부터 많은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정말 국민을 위하고 민심을 챙기는 진실함이 묻어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보는 것도 국민들의 몫이다.
 
 지역민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의 정치인들이 정말 지역민을 위해서 실현가능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 아니면 공약(空約)을 남발하며 그럴듯한 말로 지역민을 현혹하지나 않는지 곱씹어 볼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에서도 지극히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어구사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거나 보도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심지어 이런 표현을 써야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극적이고 거친 언어구사는 인간의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분열과 이기심을 조장하게 되어 결국 우리 사회의 화합을 저해하고 오직 분열과 소모적인 논쟁만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언어에도 품격이 있다. 언어의 품격은 대화의 상대성을 헤아려 진실을 담을 때 유지된다. 특히 지도층에서는 언어의 공신력을 갖는 만큼 사려 깊고 분명하게 의견을 전달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하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본래의 취지를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이를 왜곡하거나 확대재생산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성숙한 사회의 지표는 언어의 격을 갖추고도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는 언어구사 방식과도 무관할 수 없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