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예찬
가을 예찬
  • 하조나라
  • 승인 2008.10.16 09:14
  • 호수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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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 요즘이다.
높은 하늘을 보니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어찌 가을은 저리도 높고 푸른 하늘을 우리에게 선물하는걸까 ?
어릴적 초등학교 운동장 하늘에 만국기를 펄럭이며 한없이 뛰었던 운동회가 생각나는 가을이다.
마을 회관 앞과 길가에는 추수한 벼를 말리느라  일손이 바쁘다.

가영이 할머니는 늦밤을 주우러 산으로 가고 성훈이 할머니는 고추를 따느라 바쁘다.
가을이 되니 그동안 애써 가꾼 농작물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표정도 한층 밝아진 듯하다.
백운산 자락이 하루가 다르게 노랗고 붉게 물들어간다.
아침마다 눈에 들어오는 백운산 단풍이 계절의 축복인양 가슴을 상쾌하게 한다.
며칠 전에는 아이들과 함께 성불계곡 나들이를  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곳도 성불계곡이지만 백운산 안쪽으로는 그다지 자주 가는 편이 아니어서 방에만 있으려하는 아이들을 끌어냈다.

한여름 피서객과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았던 계곡에는 이미 가을 한 가운데에 와 있었다.
길을 걸어갈수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성불계곡 곳곳은 우리들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꽤나 가물었는데도 힘차게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계곡물과 신비한 바위, 그들 사이에 내려앉은 형형색색의 단풍은 감탄사를 절로 나오게 했다.
저들을 바라보면 우리 가슴 속에 오랫동안 찌꺼기처럼 눌러 붙어있던 미움과 악함, 욕심과 피로가 일시에 사라지는 듯했다.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이렇게도 좋은데 다들 사는데 바쁘다보니 이 소중한 계절을 놓치고 마는 게 아닐까 ?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도 가을 나들이가 기분이 좋은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소리치며 힘차게 달렸다.
이 맑은 자연 속에서 저렇게 힘차게 뛰어 보는 것도 요즘 아이들에겐 그리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길가에는 밤과 도토리가 떨어져 뒹굴고 바위틈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다람쥐들은 그들의 양식을 주워 나르느라 몹시 바쁜 모양이다.
노랗게 때로는 빨갛게 물든 잎들이 길가에 구르고 자리를 옮겨 다니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더욱 힘차게 들려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 이렇게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것도 축복과 같은 일일 것이다.
계곡 속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계곡에 매료되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참을 걸었다.
가끔 깊은 산중에 알 수 없는 콘테이너 박스와 흉하게 지어진 집들이 눈에 거슬렸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의 침입자 같은 저들은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가을의 계곡에 매료되어 한참을 들떠있던 우리들에게 난데없는 그들의 출현은 내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늘 하고 싶은 이야기이지만 이 성불계곡은 한적하게 걸어가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만끽하게 할 수 있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자연의 풍광을 헤치는 주변을 정비하고 차량진입을 제한했으면 한다.
그 대신 멋진 마차가 천천히 노약자들을 태우고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살아 숨 쉬는 자연 속에서 누구나가 깨끗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머물다가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 좋은 계절 가을에 더욱 절실해진다.
누구든 성불계곡을 한 번 걸어보면 가을이 얼마나 좋은 계절인지 이 계곡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