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세상 보기
사진 속 세상 보기
  • 한관호
  • 승인 2008.10.16 10:19
  • 호수 2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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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잠이 든 까닭인지 새벽에 눈이 뜨였다. 04시,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고 정기구독하고 있는 ‘시사인’을 펼쳐들었다. 첫 장을 넘기다 화들짝 놀랐다.
대기업 자동차 회사 광고 사진에서 한 어린이가 원망 어린 눈으로 필자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눈길을 마주치자 소름이 돋았다.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저 학년 또래의 아이, 해맑아야 할 그 눈빛은 무엇 때문에 반감이 그득 한가. 수 십 명의 어린이들 중 유독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둔 그 어린이의 눈길을 필자만 그렇게 받아들인 것인가. 사진 각도의 문제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것인가. 머리가 복잡한데 잠도 달아나 버렸다.

대전충남 오마이뉴스 심규상, 장재완 기자에게 광고 사진을 보였다. 그들 역시 필자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 광고는 이렀다.
광고주인 대기업에서 1,000명의 청년들을 선발해 세계 곳곳에 봉사활동을 내보냈다. 인도의 빈민가에서 의료와 지역봉사, 황사를 막기 위해 중국의 사막 그리고 헝가리, 터키, 태국으로 한국을 알리기 위해 떠나보냈다.

광고 사진은 그들 중 인도에서 봉사활동에 나선 스물 한 살 여성이 어린이들에게 음식이 담긴 식판을 건네며 자애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광경이다. 문제의 시선은 그 여학생 뒤편 어린이, 모두 음식을 먹거나 먹으려는 모습들인데 한 손으로 빵을 집으면서도 ‘미움’ 서린 눈길이 카메라를 향하고 있다.
사진 밑에는 ‘아마 갠지스강도 타지마할도 보지 못 할 것이다. 아마 2주 내내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 할 것이다. 밤새도록 벌레들에게 뜯기고 몸살을 앓을게다. 단단히 각오했지만 인도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는 자원봉사자의 후기가 적혀있다.  

외국에서 이모뻘 되는 이가 그 먼 데까지 달려와 그렇게 온갖 고생 마다며 자신들을 위해 봉사하고 먹을거리를 주는데 뭐가 고까워 원망 가득한 눈빛인가.
하지만 광고 사진을 자세히 보면 또 다른 자원봉사자나, 인도 현지인 어른은 한가득 웃음 짓고 있지만 정작 수혜의 대상인 어린이들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고 천방지축일 어린이들이지만 어쩌면, 자신들이 애처로움의 대상이란 걸 그들도 아는 걸까. 그래서 자긍심이 상한 걸까. 
그렀다. 나는 호의를 담아 손을 내민 손이나 그 손길을 잡는 이들은 호의와는 별개로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손인 경우도 있음이다.

남해신문사 시절 이야기다.
가끔 청소년 관련 행사를 취재하고 온 기자들이 투덜거렸다. 아동위원협의회 등으로 지칭되는 단체들이 가정의 달인 5월이면 청소년들을 모아 행사를 한다. 참가자는 주로 한 부모 가정 등 결손가정 청소년들이다. 이런 행사들은 대게 취재 요청이 있게 마련이고 굳이 취재가 아니라도 기록을 위해선지 단체 사진을 찍는다. 헌데 청소년들이 주춤주춤 사진기 앞에 서기는 하나 막상 사진을 찍는 순간 고개를 돌려 버려 사진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푸념이다.

자신의 얼굴이 신문에 나면 독자들에게 자신이 불쌍하게 비치리란 걸, 그들은 안다. 학교에서 굳이 가라고 하고 단 하루이나마 맛난 음식 배불리 먹고 생활에 보탬이 되는 기념품도 받고 용돈 비슷하게 금전도 생기지만 그래서라도 참가 하긴 하지만 그들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있는 걸 어른들은 모른다. 받는 이는 아는 데 주는 이는 모른다.    

한번은 비슷한 행사를 꼬집는 보도를 했다가 신문사가 시끄러웠던 적도 있다.
어느 봉사단체장 이·취임식, 대부분의 봉사단체 이·취임식처럼 이날도 취임하는 회장이 장애인, 혼자 사는 노인, 모자가정 어머니, 결손가정 청소년들에게 약간의 금일봉을 전달했다. 이를 취재한 조소영 기자가 남다른 아픔을 안고 있는 그들을 굳이 수 백 명 앞에 불러내 위로금을 전달해야 하느냐며 이런 ‘생색 내기식’ 행사는 이제 그만 하자고 보도했다. 그 봉사 단체는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보도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왜 하필이면 우리 행사 때 그런 보도를 하느냐는 거였다.

광고에 실린 자원 봉사자 여성은 해외 자원봉사 소감 말미에 ‘2주간의 인도봉사를 끝내며 생각합니다. 나의 달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계속되는 꿈을 보고 싶다고…’ 적고 있다. 
그에게 묻고 싶다. 보고 싶다는 계속되는 꿈이 자신의 꿈인지 아니면 식판을 받아든 인도 어린이의 꿈인지.